작년 1월에 시작한 SBS '백종원의 골목식당'은 최근 여름 특집으로 지난 방송에 나왔던 골목들을 찾아가 재점검하는 시간을 가졌다. 1년 반 남짓 흐른 지금, 과연 그 골목들은 살아나고 있을까. 또 이 프로그램의 진정성은 과연 통하고 있나.

◆'백종원의 골목식당', 현실을 바꾼다는 야심찬 도전
방송은 현실을 바꿀 수 있을까. 이런 질문은 과거였다면 조금 뜬금없게 느껴졌을 지도 모른다. 즉 과거의 방송이라고 하면 현실과는 동떨어진 어떤 세계의 이야기처럼 여겨졌기 때문이다. 실제로 드라마도 예능도 세트에서 찍어 내보내던 시절이 있었다. 현실과의 접점은 원천적으로 차단되던 시절. 하지만 카메라가 점점 가벼워지고 스튜디오를 박차고 나와 현실로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방송과 현실의 접점은 연결되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1박2일' 같은 예능 프로그램은 사람들이 잘 찾지 않는 오지까지 사람들을 찾게 만드는 힘을 발휘했다. 그 많은 지방의 음식점들 간판에 프로그램 이름명이 들어가기 시작한 건 이런 방송이 현실에 얼마나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가를 잘 보여준다.
'백종원의 골목식당'은 SBS가 백종원과 해온 '백종원의 3대천왕', '백종원의 푸드트럭'의 연장선에서 시작했다. '백종원의 3대천왕'에서 백종원이 찾아간 식당들이 하루아침에 문전성시를 이루는 방송의 힘을 실감한 제작진은 그 영역을 실제 식당 창업으로 넓히기 시작했다. '백종원의 푸드트럭'은 그 시험대로서 백종원이 그간 사업을 해오며 갖고 있는 노하우들을 통해 푸드트럭 창업자들을 살려낸다는 미션을 수행했고, 그것이 성공적인 결과를 만들어내자 이제 백종원은 '골목상권'으로 본격적으로 들어가게 됐다. 첫 번째 골목으로 이대 앞 죽어있던 골목을 찾아가 음식 맛에서부터 메뉴, 서빙, 청결관리 등등 다양한 솔루션을 제공함으로써 백종원은 텅 비었던 골목이 사람들로 채워지는 기적(?)을 만든다. 물론 그건 방송의 힘이기도 했지만 요식업 사업의 노하우를 꺼내놓은 백종원의 힘이기도 했다.
그 후로 '백종원의 골목식당'은 서울은 물론이고 여수, 거제, 원주, 대전, 서산 같은 지방의 골목들을 찾아가 어김없이 사람들을 몰리게 만들었다. 방송으로 현실을 바꾼다는 야심찬 도전은 성공적으로 보였다. 하지만 과연 그것은 완전한 성공일까. 아니면 방송이 만들어낸 일시적인 효과일까.

◆다시 찾은 골목, 과연 현재는 어땠을까
그렇게 어언 1년 반, 최근 '백종원의 골목식당'은 여름특집으로 과거 이 프로그램이 찾아갔던 골목들을 다시 재점검하는 시간을 가졌다. 확인 결과 백종원이 거쳐 간 모든 식당들이 다 잘되고 있는 건 아니었다. 절반의 성공, 절반의 실패라고나 할까. 예를 들어 대전 청년구단의 경우, 당시 백종원과 시음 대결을 벌이기까지 했던 막걸리집은 자체 생산한 막걸리를 전국으로 유통할 정도로 성장한 모습을 보여줬지만, 당시 솔루션을 통해 '초밥대통령'에서 '알탕대통령'으로 거듭나겠다 했던 초밥집 사장은 어째 과거로 되돌아간 모습이었다. 응원을 하러 갔던 백종원은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큰 문제는 청년구단의 식당들이 서로서로 상생하기보다는 경쟁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백종원은 청년구단처럼 함께 상생해야 할 수 있는 공간에서는 메뉴구성에서부터 가격까지 서로가 서로의 미끼가 될 수 있도록 고려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결국 방송을 통해 알려지고 사람들이 많이 찾긴 했지만, 이런 식으로 계속 운영하다가는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는 걸 확인한 셈이다.
'백종원의 골목식당'에서 가장 화제가 됐던 포방터 시장의 경우, 돈가스집이나 홍탁집처럼 거의 모범적으로 당시의 솔루션을 지킴으로써 장사가 잘 되고 있었지만 또 다른 문제가 존재했다. 그것은 손님들이 너무 많이 몰려들면서 돈가스집에 끝없는 민원이 제기됐던 것. 돈가스집은 그 포방터시장을 활성화하겠다는 마음이 확고했지만 주민들과의 갈등은 해소되지 않았다. 결국 돈가스집 내외는 이 상황이 지속되면 다른 곳으로의 이사를 고민할 수밖에 없다고 털어놨다. 방송이 가진 힘은 때론 사람들을 몰리게 만들지만, 그것 자체가 지역의 고충이 되기도 한다.
한편 이 프로그램의 첫 골목으로 화제가 됐던 이대 백반집은 초심을 지키지 않은 일로 큰 논란에 휩싸였다. 즉 애초 백종원이 제공했던 솔루션은 지키지 않으면서 그의 이름을 걸어 장사를 하고 있었던 것. 마음에 큰 상처를 입었다고 토로하는 백종원에게 백반집 사장은 눈물로 사죄했고 초심으로 돌아가겠다고 말했지만 이 문제는 시청자들의 공분을 사기에 충분했다. 골목상권을 살린다는 방송의 취지가 무색하게 이를 오히려 활용하기만 하는 가게도 적지 않다는 걸 이대 백반집은 보여줬다.

◆방송과 현실 사이, 초심 잃지 말아야
'백종원의 골목식당'은 방송으로만 보면 분명 성공적인 프로그램이다. 시청률이 10%를 넘겼고, 매주 방송이 나간 후 화제성도 최고였다. 게다가 방송으로만 끝나는 게 아니라, 실제 방송에 나간 골목들로 사람들이 모여들게 만드는 영향력까지 발휘했다. 백종원은 그 화제성의 중심에 서게 됐다. 그가 국정감사에 참고인으로 나가 골목상권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된 건 이 프로그램이 만든 힘이라고 볼 수 있다. 골목상권을 죽인다는 비판을 받아온 프랜차이즈 사업주지만 그는 이 프로그램을 통해 진정성을 드러냄으로써 골목상권의 사부님이 되었다. 무엇보다 요즘처럼 요식업 창업이 많아지고 역시 폐업하는 곳도 많아지는 현실에 어떤 작은 희망과 위로를 주었다는 건 이 프로그램이 가진 가장 큰 가치로 지목된다.
하지만 '백종원의 골목식당'은 방송과 현실 사이의 괴리에서 적지 않은 비판을 받기도 했다. 즉 화제가 됐던 방송의 주인공들이 대부분 '빌런'이라고까지 불리는 문제 많은 인물들이었고, 그들의 개과천선과 식당의 부활이 하나의 반복되는 스토리텔링으로 담겨지면서 생겨난 불편함이다. 포방터 시장의 홍탁집 사장은 대표적인 성공사례로 꼽히지만, 방송 당시만 해도 왜 이런 가게를 굳이 방송이 내보내고 백종원이 솔루션까지 줘서 살려내려 하느냐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물론 마음을 고쳐먹고 가게를 되살려낸 홍탁집 사장의 지금껏 계속되고 있는 후기가 이런 논란을 잠재워버렸지만, 방송은 항상 그런 문제의 식당을 하나씩 끼워 넣어 논란을 야기해왔다. 그것은 물론 방송 프로그램의 화제성과 시청률이 바로 그런 논란을 통해 만들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방송은 일종의 공공재의 성격을 띠고 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프로그램의 영향력이 지금처럼 큰 상황에서 수혜의 대상을 선정하는 일은 조심스러워야 할 것으로 보인다.
골목상권을 살리겠다는 그 취지와 진정성만큼은 확실히 이 프로그램이 가진 가장 중요한 존재가치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방송 프로그램으로서의 성공을 위해 의도적인 가게 선정과 다소 자극적인 편집들은 자칫 이런 진정성을 흐릴 수 있다는 걸 제작진은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전국에는 지금도 많은 식당들이 저마다의 고민을 안은 채 하루하루를 버텨내고 있다. 방송이 그들의 현실을 바꿔주겠다는 그 초심을 잃지 않을 때 적어도 작은 희망이 전달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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