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의창] 고맙습니다

이동원 대구파티마병원 소아청소년과 과장
이동원 대구파티마병원 소아청소년과 과장

"선생님, 고맙습니다."

심장초음파검사 후 결과에 대한 설명을 마치자마자, 연우엄마가 활짝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여러 보호자들에게 들었던 말인데도, 아직도 익숙하지 않다. 쭈뼛쭈뼛하면서, "네, 잘되었네요" 라고 말을 건넸다.

연우는 예방접종을 하러 개인병원에 갔다가 심장에 잡음이 들린다고, 심장초음파 검사를 하기 위해 병원에 온 아이다. 당연히 건강하게 그리고 예쁘게 태어나, 클 거란 기대를 하고 있는 엄마에게 오늘 일어난 일들이 도저히 감당할 수 없었던 모양이다. 갑자기 엄마의 눈시울이 붉어지기 시작했다. 초음파에서 보이는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연우엄마는 내가 진지하게 초음파를 보는 것조차 불안해하였다. "문제 없는 것 맞나요? 괜찮은 거 맞나요?"를 검사하는 내내, 내게 물었다.

연우는 작은 심실중격결손(심장에서 혈액을 내보는 좌우 심실 사이 벽에 구멍이 있는 병) 외에는 다른 문제는 없었다. 심장에 구멍이 있다는 이야기에 연우 엄마는 그 동안의 불안과 걱정을 모두 토해내듯 울기 시작하였다. 내가 '작은 거라 문제없다'고, '시간이 지나면 막힐 거' 라고 설명을 해도, 들리지 않는 모양이다. 마음을 다독이며, '전혀 걱정할 게 없다'고, '대부분 막힌다' 고, '일상생활에 문제없이 키우시면 된다' 고 말했다. 그제서야, 큰 걱정할 필요가 없는 것을 깨닫고 마음이 진정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여전히 무거운 발걸음으로 진료실 문을 나섰다.

그런 연우가 1년째 검사를 한 날이다. 아기 때와는 다르게 자꾸 뒤집으려고 하고, 협조가 되지 않아 검사에 애를 먹었다. 이번에도 심장초음파 기계가 뚫어지게 쳐다보던 연우엄마에게, 검사 후 '이전의 심실중격결손이 다 막혀서, 정상이 되었다'고 말해주었다. '이제 이런 검사는 더 이상 하지 않아도된다'는 얘기와 함께. 연우엄마가 그제야 활짝 웃으며, " 선생님, 고맙습니다" 고 말했다. 연우를 쓰다듬어주면서, 기쁘게 웃으며 진료실을 나가는 연우엄마를 보며, 내게 일어나 이 시간들을 생각해보았다.

'고맙습니다' 의 사전적 의미는 '남이 베풀어 준 호의나 도움 따위에 대하여 마음이 흐뭇하고 즐겁다'이다.

사실 난, 솔직히 연우의 심장병이 낫게 하는데 아무 역할을 한 것이 없다. 작은 구멍들이 저절로 자라면서 막힌 것 일뿐. 내가 한 일이라고는 심장초음파로 병을 진단하고, 완치되었다는 이야기를 한 게 전부이다. 솔직히 내가 연우엄마의 감사인사를 받을 자격은 없다. 내가 베풀어준 호의나 도움은 없었다. 저절로 좋아진 것이다.

고대 로마제국의 정치가이자 철학자였던 키케로는 '감사하는 마음은 최고의 미덕일 뿐 아니라 모든 미덕의 어버이다' 라는 말을 남겼다. 우리는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데, 지나치게 인색하며 마치 선심을 쓰는 것처럼 여기고 있다. 우리가 감사하는 마음, 고마워하는 마음을 갖기 어려울수록, 그런 표현들을 하는 것이 힘들어질수록, 그만큼 우리는 행복에서 점점 멀어질 것이다.

진짜 고맙다는 이야기를 들어야 될 사람은 잘 자라준 연우 그리고 그 연우를 사랑으로 키운 엄마인 것이다. 난 그냥 좋은 소식을 전해주는 사람이였을뿐이다. 그리고 오늘 내가 전해들은 감사의 마음들만큼 연우와 연우엄마는 더 행복해질 것이다. 이런 사소한 것에 대한 감사와 고마운 마음들이 쌓이고 쌓인다면, 서로를 미워하고 편가르는 우리의 사회가 더 아름다워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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