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에 살고 있는 최순자(여·74) 씨가 열어준 타임캡슐이다. 1963년 사진이다. '날라리들' 사진이라고 했다. 운동하는 걸 좋아해서 '날아다닌다'는 뜻에서 붙인 별칭이라고 했다.
"텔레비전을 보는데 여자 아나운서가 옛날 우리 때 교복을 입고 나오더라고요. 나도 저럴 때가 있었지 싶어 앨범을 펼쳐내 찾았지요. 1963년 천안 날라리들 오랜만이다."
충남 천안여중 졸업식을 마치고 각자 집에 갔다가 이들은 문득 뭔가 빠졌다 걸 느꼈다고 한다. 사진이 없었다. 졸업식 노래도 못 부를 정도로 펑펑 우느라 아무리 정신이 없었다 해도, 큰 업적 뒤 공덕비가 서듯 졸업사진이 빠져선 안 됐다. 졸업식 때 찍은 사진이 한 장도 없다는 걸 알게 된 날라리들은 교복과 졸업장을 들고 사진관으로 향했다.
사진이야 상체만 나오니 집에서 입고 있던 치마 위에 교복 상의만 걸치고 찍었다. 몇 시간 전만 해도 서로를 부둥켜안고 철철 울던 얼굴들은 어디 가고 졸업장을 둘둘 말아 들고 함박웃음이다. 낙엽 굴러가는 것만 봐도 까르르 웃는다는 사춘기 16살 소녀들의 영락없는 공식 졸업사진이다.
"검은색 교복에 속칭 '오징어 옷깃(하얀색 칼라)'을 꿰맬 시간이 없어 옷핀을 세 군데 집어 학교에 간 기억이 선해요. 풀질을 해서 숯다리미로 다리다 검정 숯이 묻으면 몇 번씩 다시 손질해야 했던 칼라가 그땐 정말이지 싫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몇 번을 손질해도 좋으니 다시 입고 싶네요."
최 씨는 그 졸업장을 보물처럼 장롱 밑에 반듯하게 펴서 옷 밑에 보관해오고 있다고 했다. 펼쳐진 졸업장과 사진을 볼 때면 사춘기 시절 웃음이 떠오르고 구겨졌던 기분도 펴진다. '타임캡슐은 이래서 열어보는구나.'
※'타임캡슐'은 독자 여러분들의 참여를 기다립니다. 추억을 간직하고 있는 사진, 역사가 있는 사진 등 소재에 제한이 없습니다. 사연이, 이야기가 있는 사진이라면 어떤 사진이든 좋습니다. 짧은 사진 소개와 함께 사진(파일), 연락처를 본지 특집기획부(dokja@imaeil.com)로 보내주시면 채택해 지면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사진 소개는 언제쯤, 어디쯤에서, 누군가가, 무얼 하고 있는지 설명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채택되신 분들께는 소정의 상품을 드립니다. 사진 원본은 돌려드립니다. 문의=특집기획부 053)251-15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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