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일곱 살 한 아이가 시를 쓰겠다고 선언했다. 3년 전 아이는 이모네 책장에서 빛바랜 시집 한 권을 훔쳤다. 이모가 아껴 버리지 못하고 책장에 오래 잠자던 시집이었다. 아이는 다시 두 권을 훔쳤고 또다시 다섯 권을 훔쳤다. 아이는 시에 빠졌고 시를 쓰기 시작했다. 빨리 대학에 가 제대로 시를 공부하고 싶다고 했다.
문제는 아이의 엄마다. 시를 쓰겠다는 아이를 인정할 수 없다며 펄펄 뛰었다. 이유는 시를 쓴다는 일이 얼마나 고단할지 그것이 걱정이고, 사고도 행동도 평범하지 않고 튀는 것이 걱정이었다. 시를 훔친 지 3년인 지금 아이는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비판적이며 자기 목소리를 강하게 낸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이가 쓴 시를 제대로 읽어본 적도 없고 반대만 했다.
지난 토요일 안동 만휴정(드라마 '미스터 선샤인'의 촬영지로 유명해졌다)으로 들어가는 외나무 다리에는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만휴정으로 들어가지 않고 좀 더 위쪽으로 오르면 너럭바위가 나온다. 오후 4시, 청명한 바람과 세차고 맑은 물소리가 햇살에 붉게 물들어갈 때 안동 '놀봄'이 기획한 자연힐링 프로그램 "참 좋다-작가와의 만남"이 시작되었다. 생전 처음 만나는 10여 명의 사람들. 인사를 나누고 지금 여기에 있게 된 사연을 나누었다. 서로 등을 마주 기대고 높고 푸른 하늘을 보았고, 각자 마음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들어주었다. 그리고 그리운 사람들의 이름을 부르며 손을 잡고 안녕과 평화를 기원하는 춤을 추었다.
어둠이 내려와 묵계종택 보백당으로 자리를 옮겨 몇 편의 가을 시를 읽었다. 그들 중 한 사람이 바로 시를 훔친 아이의 엄마였다. 환한 너럭바위에서는 딸이 답답하다 했는데, 어둠에 싸인 보백당에서는 딸에게 미안하다고, 돌아가면 아이의 시를 읽어 보아야겠다고 했다. 어둠은 낮에 보지 못한 것을 보게 하는 마술사 같다. 시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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