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어느 산골짜기에 하얀 물소, 검은 물소, 노란 물소가 살고 있었다. 색깔은 다르지만 서로를 위하며 행복하게 지내던 어느 날 하얀 물소가 친구들에게 세상 구경을 제안한다. 세 마리 물소는 모험길에서 만난 자칼 무리를 힘을 합쳐 물리친 후 영원히 함께할 것을 맹세한다.
한참을 걸은 이들은 동물의 왕 사자가 다스리는 초원을 발견하고는 그곳에 머문다. 사자의 속내를 알지 못한 채. 물소들이 초원을 누비며 풀을 뜯는 사이 배가 고파진 사자는 혼자 세 마리를 한꺼번에 상대할 수 없었기에 검은 물소와 노란 물소를 불러 이렇게 말한다.
"저기 있는 너희 친구가 너무 하얘서 걱정이야. 특히 밤에는 멀리서도 잘 보여 적들의 눈에 띌 거야. 저 물소 때문에 우리 모두가 위험해. 아무래도 하얀 물소를 없애야 할 것 같아." 검은 물소와 노란 물소가 외면한 사이 하얀 물소는 조용히 사라진다.
어느새 또 배가 고파진 사자는 검은 물소를 조용히 부른다. 그러고는 여기 동물들이 노란 물소를 더 많이 칭찬한다는 말을 슬그머니 던진다. 심지어 노란 물소가 더 잘생기고 멋있으며, 검은색이 불행을 가져온다고 수군거린다는 얘기를 전한다. 물론 이간질을 위해 지어낸 말이다. 사자의 말에 검은 물소는 질투심에 사로잡힌다.
그렇게 또 한 마리가 사자의 먹이가 되었다. 검은 물소는 때때로 친구들이 그리웠지만 혼자 사자 왕의 보호를 받고 있다는 사실이 내심 자랑스러웠다. 하지만 검은 물소의 좋은 날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어느 날 저녁, 검은 물소가 막 잠이 들려는데 목에서 사자의 입김이 느껴졌다. 검은 물소는 자신이 잡아먹힐 차례가 됐음을 알아차린다.
살기 위해 도망치거나 목숨을 걸고 사자와 싸울 법도 한데 검은 물소는 순순히 목숨을 내어 준다. 자신이 너무 비겁했으며 하얀 물소가 잡아먹히던 날 그때 자신도 이미 죽은 것과 같다는 말을 남기며. 이야기는 세 마리 물소의 허망한 죽음으로 끝을 맺는다.
우화 그림책 '사자와 세 마리 물소'(분홍고래)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으면서 세상이라는 말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풍경을 떠올려봤다. 삶의 터전, 희망, 아름다움, 회색빛, 암울함, 답답함, 한숨, 전쟁터. 사람들마다 그리는 풍경이 다르지만 이 책으로 상호작용한 이들로부터 가장 많이 듣는 단어는 '정글'과 '씁쓸함'이다.
밟지 않으면 밟히는 세상, 조금이라도 약점을 보이면 얕잡혀 보이는 세상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의 이익과 자리를 지키기 위해 이간질이라는 방법을 곧잘 사용한다. 이간질은 비열하긴 해도 돈과 시간이 적게 드는 효율적인(?) 무기임에 틀림없다.
당사자가 없는 자리에서 그 사람을 화제로 올릴 때가 있다. 좋든, 나쁘든 남 얘기를 자주 해서 좋을 게 없다는 걸 알면서도 습관처럼 한다. 특히 험담은 더욱 강렬히 하는 것 같다. '힘이 되는 말, 독이 되는 말'(마일스톤)을 쓴 조셉 텔루슈킨은 우리가 남을 험담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남의 지위를 깎아내리고 자신의 지위를 높이려는 심리 때문이라고 했다. 다른 사람의 사회적 지위가 추락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데서 얻는 만족감이 엄청나다는 것이다.
그런데 한참 남 얘기를 하다 보면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쳐간다. '이 역시 이간질의 또 다른 형태이겠지.' 어느 교수는 이간질이 한 사람의 인격적, 사회적 평판을 떨어뜨리는 야만적 행위라고 했다. 정곡을 찌르는 말에 뜨끔해진다. 그동안 나는 얼마나 자주 야만적인 행위를 일삼았던가?
살면서 누구나 이간질의 주체가 되거나, 피해자가 된 적이 있을 것이다. 이유가 어떻든 양쪽 모두의 내면에 불안이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내 것을 잃을까 봐 두렵지만 남이 더 많이 갖는 것도 싫은 사람들, 그래서 마음이 흔들리는 만큼 눈빛도 흔들린다.
세상이 어지러울수록, 차지할 수 있는 자리가 줄어들수록 교활한 사자와 어리석은 물소의 수는 점점 더 늘어날 것이다. 나도 좋고 너도 좋은, 나도 이기고 너도 이기는 상생의 미덕을 강조하지만 실현이 참 어렵다. 우화 그림책이 건네는 메시지가 유독 크게 다가오는 가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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