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 90년대 초 대학가 운동권의 대표적인 구호 중 하나는 '양키 고 홈'이었다. 말 그대로 '미군은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는 의미다. '우리가 알아서 할 테니 간섭하지 말고 떠나라'는 메시지였다.
30년 가까이 잊고 지내던 이 구호가 최근 불현듯 생각난 건 미국, 일본과 엮인 지소미아 연장 문제와 방위비 분담금 증액 등 한국을 둘러싼 국제 정세 때문이다. 우리나라 정부가 과연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관심을 갖고 지켜보다 순간 떠올랐다.
아마 청와대 참모진은 물론 국회의원, 정권 실세 중 당시 '양키 고 홈'을 앞장서 외쳤던 인사가 적잖게 포진돼 있기 때문에 그러했던 거 같다. 이들이 이 난국을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지, 혹여나 '그럼 그냥 철수하세요'라는 말이 나오지는 않을지 자못 궁금했던 것이다.
미국은 일본을 대변하듯, '북한의 위협 앞에서 한일의 군사 정보는 계속 공유돼야 한다', '지소미아는 종료돼선 안 된다'는 메시지를 우리 측에 분명히 전했다.
나아가 방위비 분담금 증액을 요구했다. 북한의 위협 등으로부터 한국을 지키기 위해 미군이 한국에 주둔하고 있는 만큼 한국이 주한미군 유지비를 실질적으로 분담해야 한다며 엄청난 방위비 분담금 증액을 주장하고 있다. 미국의 요구 분담금은 현재의 5배, 6조원에 달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한국을 지키는데 왜 미국이 비용을 부담해야 하느냐는 건 미국으로서 할 수 있는 얘기다.
그러나 미군 주둔이 한국 보호만을 목적으로 하는 게 아니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한국전쟁 전후 세계가 냉전시대로 양분돼 맞섰던 당시, 한국은 공산주의에 대한 미국의 태평양 방어선이기도 했다.
당시 소련과 중국의 틈바구니 속에서 한반도의 북쪽이 공산화된 상황에서 남한까지 공산화가 되면 태평양을 사이에 두고 미국이 정면으로 대치할 수밖에 없는 구도가 만들어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미국은 자국을 지키고 공산주의 팽창을 막기 위해서라도 방어에 나설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혹여 그 땅이 한국이 아니었더라도, 자비를 들여서라도 말이다. 한국이 미국의 군사기지이자 지정학적 요충지 역할을 하고 있다는 얘기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중국이 미국의 세계 1인자 자리를 호시탐탐 넘보고 있는 상황과 북한의 핵 위협 앞에서 미국 자국 이익을 위해서라도 한국의 지정학적 위치가 절실할 수밖에 없는 상황임은 분명하다.
미국의 사드 배치 압박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한국을 위해서'라는 명분을 앞세우긴 했지만 북한의 핵미사일로부터 미국 본토를 보호하고, 중국의 턱밑에서 중국을 위협할 수 있는 군사장비를 배치, 자국을 방어하기 위해선 남한에 사드 배치가 필요했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물론 주한미군이 그동안 한국을 방어해준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한국전쟁 후 미국의 원조와 도움 아래 이렇게 성장할 수 있었던 것도 두고두고 감사해야 하는 것도 맞다.
중국과 북한의 위협과 협박 속에서도, 중국의 보복으로 한국 기업과 경제, 관광이 엄청난 타격을 입는 상황에서도 한국 정부가 미국의 강력한 '사드' 배치 요구에 응했던 것도 이러한 전통의 굳건한 한미동맹 관계 때문이었다.
그런데 수십 년간 이어져온 한미동맹이 최근 몇 년 새 큰 변화에 맞닥뜨렸다. 미국이 변했고, 국제 정세도 급변하고 있다. 한국 정부가 이들 문제를 두고 한미 관계가 깨지지 않고, 한일 관계를 다시 회복할 수 있는 묘수 짜기에 고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아직 이렇다 할 해법은 제시되지 않고 있다.
이 땅에 미군이 없다면? 가정이지만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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