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선거 독재

정경훈 논설위원
정경훈 논설위원

선거는 민주주의 국가의 전유물이 아니다. 공산 독재국가에서도 선거는 한다. 정부가 지정한 1인에 대한 찬반투표가 그런 것이다. 그러나 이는 독재체제에 민주적 정당성이란 외피를 씌우기 위한 사기(詐欺)일 뿐이다. 이를 '선거 독재'라고 부를 수 있겠다.

이렇게 노골적이지 않고 좀 더 세련된 선거 독재도 있다. 다당제를 허용하면서도 공산당 지배에는 전혀 손상이 가지 않는 방식으로, 구 동독이 좋은 예다. 1963년 동독은 인민의회 의석을 재배분했다. 지배 세력인 독일사회주의통합당은 100석에서 110석, 사통당 2중대인 대중조직 대표체는 110석에서 144석으로 각각 늘리고 자유민주당 등 3개 비공산주의 정당은 이전과 똑같이 각각 45석을 배정했다. 범(汎)공산당이 비공산당을 압도하도록 '제도화'한 것이다.

공산국가 출현 이전에도 선거 독재는 있었다. 재산 규모에 따라 투표권을 불균등 배분하는 것이다. 재산이 많은 극소수의 첫 번째 계급과 이들보다 재산은 적고 수는 더 많은 두 번째 계급, 재산이 거의 없는 대다수의 세 번째 계급이 각각 동일한 수의 대표를 갖는 프로이센의 '3계급 투표제'가 대표적이다.

이는 과두(寡頭) 지배 체제의 유지가 목적으로, 당연하지만 극단적인 정치적 차별을 낳았다. 1913년 선거에서 지지율 17%인 보수당은 50% 의석을 차지했지만 28%의 지지를 받은 사민당의 의석은 2%에 불과했다.

더불어민주당이 강행 처리하려는 선거법 개정안도 '선거 독재'를 겨냥하고 있다. 명분은 사표(死票) 방지이지만 속셈은 범여권 군소정당을 장기 집권을 위한 들러리로 세우는 것이다. 그 미끼가 비례대표 의석수 증가이다. 어떻게 조정하든 지금보다 지역구를 줄이고 비례대표를 늘리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하면 군소정당 특히 정의당은 어쨌든 득을 본다.

정의당이 28일 선거법 개정안 원안보다 지역구를 약간 늘리고 비례대표를 줄이는 수정안을 제시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의석수 욕심에 선거 독재 구축에 합세하려는 그 모습이 참으로 역겹다. 이러니 '정의당'에는 '정의'가 없다는 소리가 나오는 것 아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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