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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매일신춘문예]단편소설 당선소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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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수경

소설 당선인 고수경
소설 당선인 고수경

나는 맏이 겸 영재인 언니와 막내 겸 아들인 동생 사이에서 어정쩡한 둘째 딸로 자랐다. 머리든 뭐든 가지고 태어난 게 없으니 우스꽝스러운 행동으로 가족들을 웃기려 했다. 엄마아빠가 가장 좋아하는 일화는 일곱 살쯤 피자 박스를 머리에 이고 다닌 일이다. 나중에 그건 웃기려던 거였다고 말했을 때 그들은 아냐, 그건 백 퍼센트 식탐이었어, 라며 웃었다.

그러니까 나는 귀엽긴 해도 자랑할 만한 자식은 아니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외할머니는 나를 다짜고짜 믿으셨다. 아무 근거도 없이 얘가 뭔가가 될 거라고 장담하면서. 말의 힘은 참 신기하다. 내 글쓰기는 바로 거기서부터 시작했으니까.

해명할 게 하나 더 있다. 중학생 때 내 백일장 상장을 모아둔 파일에 누군가 실수로 언니의 이름을 붙인 걸 보고 울었던 이유. 집에서 쫓겨나도 울지 않던 애가 울자 가족들은 많이 당황했는데 나는 말을 못했다. 그 파일만큼은 세상에서 유일하게 나만의 것이라고. 그게 없으면 나는 피자 박스를 이고 다니던 일곱 살일 수밖에 없다고 말이다.

아직도 그렇다. 나는 소설을 빼면 남는 게 없는 인간이다. 그래서 내내 걸어오고 뛰어왔다. 밑창이 닳기 직전 튼튼한 새 신을 신겨주신 매일신문과 심사위원분들께 감사드린다. 덕분에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님들을 뵐 낯이 생겼다. 함께 걷는 동안 주저앉을 때마다 일으켜 준 노른자, 도란, 소란, 연작에게 무한한 고마움을 느낀다. 왜 이렇게 느리니, 저글링하면서 걸을 순 없니 같은 말 않고 응원석에서 기다려준 가족들, 친구들과 하이파이브 한 번씩 해야겠다.

이제 고백하지만 나는 가끔 당선 소감을 쓰는 상상을 하곤 했다. 그 소감의 끝에는 항상 조경란 선생님이 계셨다. 여러 버전을 생각해두었는데 결국 꺼내온 건 2013년 겨울의 흑석동 지하 강의실이다. 졸업을 앞둔 마지막 수업, 어디서도 해본 적 없는 이야기를 털어놓던 순간. 선생님은 다 들으시고 짧게 대답하셨다. 고수경아. 계속 소설을 써라. 나의 모든 동력은 그 한 마디가 전부다.

▶ 고수경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졸업, 동 대학원 석사 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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