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2020 매일신춘문예]시조 당선소감

당선인 여운(본명 나동광)

여운 시조 당선인
여운 시조 당선인

추위를 타는 자에게 겨울은 길고 더위를 타는 자에게 여름은 길다. 삶의 궤도에서도 길게 느끼는 힘든 계절이 있다. 그러나 아무리 길더라도 계절은 바뀌고 활기를 되찾을 때가 오기 마련이다. 빛과 어둠의 순환을 보며 느린 걸음으로 하루하루를 견디면서 지내다 보면 어느새 자기도 모르게 따뜻한 봄과 선선한 가을은 오리라.

특별한 형식 없이 제멋대로 자유시를 쓰다가 만난 시조는 수식어가 많지 않은 절제된 언어의 미와 일정한 구조로 유지되는 소리의 질서와 운율이 가득한 속성을 지니고 있었다. 그것은 한민족의 집단 무의식과 숨결이 깃든 서정적 장르였다. 시조에 대한 관심이 점차 커졌다. 뒤늦게 접했지만 서두르지 않고 가장 낮은 곳에서부터 비상을 꿈꾸던 초심은 우선 백일장으로 눈을 돌렸다. 백일장은 해마다 봄이나 가을에 전국적으로 열렸다. 그러나 백일장 장원으로 뽑힌다고 하더라도 문단에서는 대부분 그것을 등단으로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가 팽배했다. 등단은 원칙적으로 신문이나 계간지를 통해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개인적으로 언제까지나 땅바닥에 앉아 허리를 구부린 채 한 시간 혹은 반 시간 안에 주어진 시제에 따라 즉흥적인 시만 쓸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그때 익힌 잘못된 버릇은 계속해서 따라다녀 떨쳐버리기가 여간 쉽지 않았다.

좀 더 깊이 있고 세련된 습작 과정이 필요했다. 그리하여 제대로 된 일간 신문 지면을 통해 문단에 데뷔할 결심이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얼마나 오랜 날을 그렇게 붙잡고 살았는지 계산도 하기 어렵다. 아마 십 년도 넘게 흘러간 것 같다. 물론 중간에 포기했던 시절이 있었다. 매년 늦가을과 겨울 사이 뛰놀던 설렘이 순식간에 무너지면서 열정은 식어버렸다.

찬바람이 스며들어도 끝까지 글줄을 놓지 않고 기다린 덕분인지 갑자기 당선을 축하하는 전화를 받아 떨리던 가슴은 더 떨리고 있다. 모든 이웃이 함께 나누는 정감 어린 시적 소통으로 봄이 올 때까지 한파를 무사히 견딜 수 있기를 바란다. 마리안느와 마가렛 같은 손길이 있기에 세상은 아직 훈훈하다.

▶여운(본명 나동광)

중앙일보 시조백일장 입선

구제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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