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밑이다. 달력의 숫자가 바뀔 무렵이면 사람들은 늘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게 된다. 두드러질 게 없는 하루하루의 복제였든 오래 기억될 시간의 연속이었든 그 평가는 중요하지 않다. 그날이 그날이어도 삶에서 한 단락을 지으며 앞날에 희망을 걸고 기대를 얹어보는 순간만큼은 특별해서다.
아무런 근심과 걱정 없이 1년을 보낸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하는 생각이 먼저 든다. 어려운 경제 상황 탓에 평온한 일상보다는 삶에 쫓기고 상대적 박탈감에 짓눌려 무거운 마음으로 1년을 버텨온 사람이 더 많았을 것이다. 개인만 그런 것은 아니다. 우리 사회 전체도 마찬가지다. 2019년을 돌이켜 볼 때 긍정보다는 부정의 이미지가 더 부각된다. 혼란한 정치와 외교안보, 활기를 잃은 경제, 분열된 사회로 인한 두려움과 불편함이 더 크다.
무엇보다 끝 모를 정쟁에다 집권 세력의 독주는 불안감을 주기에 충분하다. 한국 정치 문화에서 화합과 조화, 균형과 견제의 미덕은 사라진 지 오래이지만 지난 1년 우리 정치가 걸어온 길은 실망을 넘어 절망의 문턱도 넘어선 느낌이다. 한국 정치는 그동안 상대의 어깨와 손을 맞잡고 리듬에 맞춰 경쾌하게 돌아가는 왈츠 무대를 연출한 적이 한 번도 없다. 마치 불길에라도 덴 듯 질겁하며 상대의 손을 뿌리치고 거친 언어로 상대 속을 후벼 파는 '동물 정치'의 유전자만 발현했다.
집권당과 죽이 맞은 군소정당들이 '4+1 협의체'라는 기형의 코끼리를 만들어내 입법 기능을 장악하고 제1야당에 물을 먹인 것은 2019년 한국 정치의 지형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건이다. 그 분쇄기에 선거법이 가루가 됐고 공수처법까지 말려 들어간 형국이다. 나라와 국민이야 어떻게 되든 갈 데까지 가보자는 심보가 아니라면 도저히 해석하기 어려운 사건의 연속이다. 게다가 조국 사태를 비롯해 갖가지 권력형 비리 의혹과 뭉개기는 민주주의 가치와 질서마저 온통 헝클어 놓았다.
이런 사이 정책이 뒤틀리고 제도는 방향을 잃었으며 심지어 입법의 현실까지 왜곡되는 '정치 독주판'이 펼쳐졌다. 그런데 브레이크 없는 독주와 독단은 그 끝을 보게 마련이다. 독주의 끝에 펼쳐지는 충돌의 잔해는 예상을 뛰어넘고 그로 인한 공포감은 인내심의 경계를 이탈할 수밖에 없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한·중 정상회담 때 시진핑 주석에게 "잠시 섭섭해도 멀어질 수 없는 관계"라며 두 나라의 관계에 대해 언급했다. 문 대통령의 발언에 담긴 진의를 정확히 알 수는 없다. 하지만 불편한 관계보다는 서로 협조해 더 나은 관계로 나아가는 것이 진정한 이익이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 안에서는 그런 말이 왜 한마디도 나오지 않고 또한 씨알도 먹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과연 여야는 이웃이 아니라 불구대천의 원수인가. 권력과 정치적 영향력의 많고 적음이나 정적 관계를 떠나 여야는 똑같이 대한민국과 5천만 국민의 정당이자 국민의 기관이다. 여든 야든 상대를 청산의 대상으로 여기는 것은 오산이자 착각이다.
경자년(庚子年) 새해에는 대립과 반목의 어두운 시간을 끝내고 모두가 하나의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출발점이기를 희망한다. 김민기의 '작은 연못' 노랫말처럼 서로 싸우다 한 마리가 물 위에 떠오르고, 그놈 살이 썩어 들어가 물도 따라 썩어 연못 속에 아무것도 살 수 없게 되는 상황은 피해야 하기 때문이다. 저쪽이 밉다고 썩었다고 숨통을 조이면 나는 온전할 수 있을까. 함께 사는 것이 연못을 살리고 나도 사는 길이다. 독주와 독단은 이제 끝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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