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혼자 살아도 괜찮아] '냥냥이' 있어 외로움 훌훌, 아플땐 쓸쓸함 배가

사회 초년생 독립의 명과 암
가족 간섭 없이 고양이들 키우며 집 마음대로 꾸며… 범죄 우려 등 불편 큰 만큼 책임감도 커

취직을 계기로 혼자 살이를 시작한 권가은 씨는 대구 달서구 한 다가구주택 투룸에 입주한 뒤 좋아하는 취향의 가구와 인테리어 소품으로 집을 꾸미고 고양이 두 마리를 키우며 살고 있다. 권 씨가 고양이
취직을 계기로 혼자 살이를 시작한 권가은 씨는 대구 달서구 한 다가구주택 투룸에 입주한 뒤 좋아하는 취향의 가구와 인테리어 소품으로 집을 꾸미고 고양이 두 마리를 키우며 살고 있다. 권 씨가 고양이 '마음이'를 돌보는 모습. 성일권 기자 sungig@imaeil.com

"좋아하는 고양이를 마음껏 키우며 애정을 오롯이 쏟을 수 있고, 가족의 생활 습관에 얽매지 않고 내 시간과 취향을 자유롭게 누릴 수 있어요. 친구를 만나 함께할 아늑한 공간이 또 하나 생긴 것도 정말 좋아요."

지난해 9월 대구 달서구 성서공단 한 기업 디자이너로 취직한 권가은(28) 씨는 이를 계기로 당시 부모님과 함께 살던 동구 주택에서 독립, 달서구 한 다가구주택 투룸에서 월세로 혼자 살이를 시작했다.

자가용 차가 없는 그가 동구에서 달서구까지 출퇴근하기는 상당한 시간이 들다 보니 가까운 곳으로 이사하는 방법을 택했다. 그는 온전히 혼자 살고부터 자유와 책임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고양이 돌보며 힐링, 내 공간 취향껏 꾸미며 살아요"

자취 생활이 처음은 아니다. 대학 때는 미술 작업실을 공유하고자 학과 동기들과 학교 주변 원룸에 입주해 1년가량 살았고, 취업을 준비할 때는 함께 공부하던 친구와 도심에 원룸을 얻어 지낸 적 있다. 이번 독립은 룸메이트가 있을 때와 달리 처음으로 혼자만의 공간을 얻은 것이다.

해방감이 들었다. 시간을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게 됐다. 과거 부모님이 오후 10시 전후로 제한했던 귀가시간에 더이상 얽매지 않는다. 종종 친구들과 늦게까지 만나거나 심야 영화를 볼 수 있게 됐고, 친구를 초대해 홈파티를 열거나 잠자리를 제공하고 밤새 이야기를 나눌 수도 있게 됐다. 혼자서도 잠드는 시간까지 마음껏 책, 웹툰을 볼 수 있다.

해방감의 반작용일까, 떨어져 지내는 가족과 자주 연락하며 더 많이 소통하는 장점도 있다. 권 씨는 "함께 살 때와 비교하면 잔소리와 퉁명스러운 대답보단 애틋한 안부 인사가 더 많이 오간다"고 말했다.

입고 먹을 옷차림이나 식사 메뉴를 가족들 간섭 없이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고, 전구 장식, 엽서나 스티커 등 각종 인테리어 장식을 벽과 방문 등에 꾸며 두고 크리스마스와 새해 등 특별한 날 방에는 벽 한켠에 풍선 장식을 부착하는 일도 가능해졌다.

특히, 좋아하는 고양이를 키우며 애정을 쏟을 수 있는 게 가장 만족스럽다. 선물 받은 3살짜리 브리티시롱헤어 종 '마음이'와 길에서 구조한 1살 한국 고양이 '노을이'와 함께 산다. 집에는 고양이가 오르내릴 수 있는 캣폴이나 반려묘 전용 자동 정수기를 설치하는 등 고양이 친화적인 환경을 조성하고서 이들 체력과 건강을 돌본다.

고양이들은 권 씨가 집에 있을 때면 주변을 맴돌며 그에게 몸을 비비거나 캣폴을 오르내리며 뛰논다. 권 씨가 외출했을 땐 한가로이 낮잠을 자거나 둘이서 서로에게 장난치며 놀곤 한다. 그는 "나와 고양이들은 서로에게 생계와 위안을 제공하는 없어선 안 될 사이가 됐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연말 권가은 씨가 침실에서 웹서핑을 하며 고양이를 돌보고 있다. 크리스마스를 맞아 벽 곳곳에는 장식을 부착했다. 고양이
지난해 연말 권가은 씨가 침실에서 웹서핑을 하며 고양이를 돌보고 있다. 크리스마스를 맞아 벽 곳곳에는 장식을 부착했다. 고양이 '마음이'(오른쪽)와 '노을이'(왼쪽). 성일권 기자 sungig@imaeil.com

◆범죄 피해 우려, 지출만큼 '책임감'도 커져

여성 혼자 다가구주택에 산다는 건 편치만은 않은 선택이었다.

혼자 사는 여성을 노린 범죄가 워낙 이슈화했다 보니 스토킹, 강도 등 주거침입 우려가 언제나 크다. 생필품 등은 택배 배송을 주로 쓰지만 택배기사를 대면하기는 왠지 모르게 겁이 나고, 어두운 골목길을 혼자 퇴근할 때도 불안감에 주위를 둘러보게 된다.

이런 불편을 우려해 대로변과 가깝고 초등학교·주택이 밀집한 곳, CCTV와 엘리베이터가 있는 집을 구했지만, 그래도 불안감이 싹 가시진 않는다. 이 때문에 집을 오가는 걸음이 빨라지곤 한다.

고정지출이 큰 것도 단점이다. 음식, 반찬을 조금이라도 저렴하게 사려면 슈퍼보다 대형마트에서 장을 보는 편이 좋다. 그러나 차가 없는 권 씨가 혼자 마트 장을 보기란 쉽지 않다. 남자친구와 함께 마트에 가더라도 혹여 다 먹지 못한 식재료가 상해서 버릴까봐 다량 구매는 꿈도 못 꾼다.

결국 부모님이 집에서 드시는 반찬을 덜어서 얻어 오거나, 배달 주문을 해 비싼 돈을 들여 끼니를 해결하곤 한다. 배달 주문을 할 때도 최소 주문 금액에 맞추느라 불필요한 것까지 함께 사야 해 불편이 크다.

작은 세탁기로는 울세탁, 이불 빨래 등을 제대로 하기 어려워 세탁소에 맡기고 월세, 도시가스·전기·수도요금을 혼자서 충당하자니 '돈을 모아야 한다'는 생각에 아까운 생각도 든다.

이 밖에도 원래 살던 동네의 가족·친구를 보고싶을 때나 몸이 아플 땐 쓸쓸함이 배가 된다. 배달 주문 후 꼭 발생하는 비닐봉투나 1회용 쓰레기도 골칫거리다.

권 씨는 "오래된 주택가라 골목이 너무 어둡고, 범죄나 쓰레기 무단 투기를 막아 주는 CCTV도 늘었으면 한다. 아파트엔 꼭 있는 재활용품·음식물 수거함도 확대 보급되면 좋겠다"고 했다.

이런 불편에도 권 씨는 사회 초년생이라면 한번쯤 꼭 독립해 보길 권했다. 첫 사회생활과 처음 가정을 꾸리는 과정에서 몰랐던 생활감각을 키울 수 있다는 이유다.

"제가 번 돈으로 살림을 꾸려 나가다 보니 내 삶을 유지하는 데 얼마만큼의 비용, 어떤 사회 기반시설이 필요한 지를 알 수 있었습니다. 자유를 얻은 만큼이나 책임감이 생긴 거죠. 고양이와 함께 꾸린 가족(?)도 아주 만족스럽고요. 꼭 한번 혼자 힘으로 독립해 보시길 추천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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