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그들, 신줏단지인가

정인열 논설위원
정인열 논설위원

"집 앞을 흐르는 내(川)가 넘치자…조상의 신주를 모신 사당의 감실 등 최소한의 필수 물품만 갖고 피난에 나섰다…등에 아기를 업고 가슴에는 감실을 안은 종부는 갈수록 거세어지는 물살 속에서 신주를 놓칠까 바짝 감실을 끌어안는 순간 등에 업은 아이가 물에 휩쓸렸다…."

불과 100년 전인 1920년 홍수로 경북의 어느 문중 종부가 겪은 사연이다. 당시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의 여지조차 없었다. 신주는 목숨보다 더 소중히 여겼기에 어린아이와 바꿔야만 했다. 종부에게 집안 신주는 결코 놓쳐서는 안 되는 운명과도 같았기에 그럴 만했으리라.

한때 사회에 회자되던 '신주(神主) 모시듯 한다'거나 '신줏단지'에서처럼 신주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대상을 흔히 일컫는다. 조상의 영혼을 모신 신주는 선조를 숭상하는 정신이 깃든 상징물이었다. 그랬기에, 특히 조선에서는 신주는 더욱 함부로 할 수 없는 존재였다.

세월이 흐르고 시대가 바뀌었음에도 변형된 '신주 모시기'와도 같은 행태가 없어지지 않고 도지는 듯하다. 특히 선거철이 되면 대구경북에서 특정 정치 세력과 무리를 떠받드는 행태가 그렇다. 제대로 대접도 받지 못하면서 단지 특정 정파의 깃발만 나부끼면 몰표를 아끼지 않는다.

그래도 뒷사람이 기리며 슬픔과 아픔을 공감하는, 한 종부의 운명적인 신주 감싼 사연과 달리 지금 대구경북의 엉뚱한 신주 모시기는 제대로 된 평가나 대접도 받지 못함에도 일방적이고 변하지 않으니 불가사의가 아닐 수 없다. 이러니 공천에서 되풀이되는 대구경북 민심 뭉개기는 자초한 셈이나 다름없다.

4·15 총선에서도 무원칙·불공정 공천은 여전했다. 그래선지 지난 2004년 총선 이후 16년 만에 여당과 제1야당은 대구 12곳, 경북 13곳 전 지역에 후보를 내는 선거전을 벌이고 있다. 벌이 꿀 따러 꽃을 찾듯, 경쟁력 갖춘 인물이 대구경북에 몰리게 제대로 한 표를 던질 절호의 기회이다.

당의 깃발 색깔만 보고 몰표를 던지며, 신줏단지처럼 여긴 정파를 이제는 사라지게 할 때다. 지킬 만한 가치가 없다면, 그들을 더 이상 대구경북의 신줏단지로 둘 수는 없다. 그들을 오랜 세월 신주처럼 받든 동안, 대구경북은 과연 어땠는지 살필 때다. 나날이 고향을 등지는 젊은이와 늘어나는 한숨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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