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배자가 없다' 혹은 '권력이나 정부가 없다'라는 뜻을 지닌, 그리스어의 아나코(anarchos)에서 파생된 아나키즘(anarchism)은 개인의 자유 실천을 최고의 가치로 추구하여 국가에 의한 억압을 타도하고 모든 개개인의 자유의지의 연합을 바탕으로 사회를 건설하려는 사상이다.
아나키스트들은 민족주의 운동에 대해, 독립국가를 건설한다는 명목으로 자본주의 계급의 착취적 지배 구조를 확립하고자 민중을 동원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비판하였다. 동시에 그들은 공산주의 운동에 대해서도, 프롤레타리아(무산자)가 국가권력을 장악하여 중앙집권체제를 수립함으로써 권력 기구를 독점하려는 술책을 드러낸 것뿐이라고 비난하였다.
일제강점기 속에서 한국인 아나키스트들은 일본 제국주의를 박멸하고 민족 해방과 조국 독립을 위해 여러 단체들을 결성하였다. 그중 일본에서는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 등이 1922년 12월경에 흑우회(黑友會)를 조직하여 기관지 '후데이센징'(太い鮮人)을 발간해서 제국주의, 민족주의, 공산주의를 배격하며 아나키즘을 전파하는 데 앞장섰다. 한편 그들은 1923년 4월에 불령사(不逞社)를 설립하여 일본 황태자 결혼식에 폭탄을 투척하려고 폭탄을 구입하려다가 관동대지진이 발생한 직후 구금되어 대역사건으로 비화되는 고초를 겪었다.
국내에서는 불령사 기자였던 서동성이 대구로 돌아와서, 1925년 9월 29일 대구노동공제회 회관에서 방한상, 서학이, 신재모, 정명준 등과 함께 아나키즘을 연구하는 합법적인 학술단체로서 진우연맹(眞友聯盟)을 결성하였다. 방한상은 그해 11월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 오사카, 나고야 등지에서 아나키스트들과 접촉하여 진우연맹과의 상호 협력 문제를 논의하였다. 또한 방한상은 이치가야 형무소를 방문하여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를 면회한 후에 귀국해서 의연금을 모아 송금하기도 하였다.
진우연맹은 부호들로부터 독립자금을 받아 향후 2년 이내에 대구의 도청, 경찰부청, 우편국, 지방법원 및 복심법원을 포함하여 주요 관서와 일본인 점포를 파괴함과 동시에 도지사, 경찰부장, 법원장, 기타 수뇌부를 암살할 파괴단(破壞團)을 조직하기로 계획을 잡았다. 암살과 파괴 활동을 위해 중국 상해에 있던 유림(柳林·1894~1961) 또는 김관선과 평양의 김원에게 폭탄 구입을 의뢰하였다.
이 중 안동 출신인 유림도 대표적인 아나키스트로서 조선무정부주의자연맹 대표로 중국 중경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참여했던 인물이었다. 유림은 중국으로 망명하기 전에 대구와 안동을 오가며 부흥회(復興會)와 자강회(自强會)에 몸담은 적도 있었다.
그러나 1926년 5월에 안달득이 체포되어 취조를 받던 중 일본 경찰은 조직원들을 검거하였고 가택수사를 실시하였다. 일본 경찰이 물증을 밝혀내지 못했음에도 대부분이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실형을 선고받았다.
대구 교풍회 회장, 대구 자제단 발기인, 국민협회 대구지회장 등을 지냈던 친일 인물인 윤필오(1860~1924)의 아들인 윤우열(1904~1927)은 조선청년총동맹, 철도인부조합, 제4청년회 등에서 활동하며 사회운동에 발 벗고 나섰다. 이후 윤우열은 조선공산당 창당을 둘러싼 갈등에 회의감을 품고, 1925년 7월 즈음에 동갑내기 박흥곤과 함께 과격한 파괴 행위로 조선 혁명을 이루기로 합의하여 그해 11월 초 허무당을 만들고 허무당선언서를 작성하였다. 그 핵심 내용은 폭력적 방법을 통해 조선의 혁명을 이룩하자는 것이었고, 폭력 노선 이외 다른 투쟁 방식을 인정하지 않았다.
윤우열은 허무당선언서를 인쇄하여 1926년 1월 3일 조선의 신문사, 통신사, 은행 및 일본의 각 정당, 잡지사 등지에 발송하였다. 그러나 윤우열은 광화문우체국을 방문한 행적이 일경에 의해 포착되어 소격동에서 체포되었다. 윤우열은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되어 복역 중 지병인 늑막염이 악화되어 풀려났다가 24세의 나이로 순국하였다.
민족주의와 사회주의에 가려졌던 아나키즘 독립운동이 대구에서도 이루어져 왔다.
댓글 많은 뉴스
문재인 "정치탄압"…뇌물죄 수사검사 공수처에 고발
홍준표, 정계은퇴 후 탈당까지…"정치 안한다, 내 역할 없어"
세 번째 대권 도전마저…홍준표 정계 은퇴 선언, 향후 행보는?
[매일문예광장] (詩) 그가 출장에서 돌아오는 날 / 박숙이
대법, 이재명 '선거법 위반' 파기환송…"골프발언, 허위사실공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