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로스쿨 10년, 변호사 3만명 시대] 작년 변시 1639명 탈락…합격하면 수도권에 간다

[하] 추락하는 변시 합격률·지역 떠나는 법조인

지난 2월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법학전문대학원 원우협의회 등이
지난 2월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법학전문대학원 원우협의회 등이 '로스쿨 개혁 촉구 집회'를 통해 변호사 시험 합격률을 높여 로스쿨 교육을 정상화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2012년 첫 변호사시험(이하 변시)이 실시된 이후 지금까지 1만2천명이 넘는 로스쿨 출신 법조인이 탄생했다. 그러나 변시 합격률은 해를 거듭할수록 떨어졌다. 지난해는 응시생의 절반만 합격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변시에 떨어진 이들이 누적되면서 최근에는 '변시 낭인' 문제가 로스쿨 체제의 부작용으로 떠오르고 있다. 지역 로스쿨 출신 법조인들이 수도권으로 향하고 있는 것도 문제다. 사회 각 분야의 법조인을 양성한다는 로스쿨 도입 취지가 퇴색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해마다 떨어지는 변호사시험 합격률

로스쿨 졸업생이 응시하는 변호사시험(이하 변시) 합격률은 계속 떨어지고 있다. 변호사시험법에 따라 합격자 수는 응시생이 아닌 전국 로스쿨 총 입학 정원(2천 명)의 75%를 기준으로 결정되기 때문이다.

법학전문대학원협의회에 따르면 지난 2012년 실시된 1회 변시 합격률은 87.1%. 이후 합격률은 2회 75.1%, 3회 67.3% 등으로 급격하게 하락했고, 2018년 치러진 7회 변시에선 합격률이 49.3%로 사상 최저치를 기록했다. 가장 최근에 실시된 8회 변시 합격률 역시 50.7%였다. 응시생 3천330명 가운데 1천639명이 탈락한 것이다.

합격률이 낮아지면서 로스쿨 간 서열화가 생겨난 점도 문제로 떠올랐다. 지난해 법무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학교별 변시 합격률은 서울대 80.9%, 고려대 76.4% 등 영남대를 제외한 합격률 상위 10개교 모두 수도권 소재 로스쿨인 것으로 나타났다. 지역 로스쿨의 경우 영남대가 61.1%로 8위를 기록했지만 경북대는 45.4%로 평균 이하에 머물렀다.

변시에 연이어 탈락한 '변시 낭인'들은 최근 로스쿨 체제의 또 다른 부작용으로 지적되고 있다. 변호사시험법에는 로스쿨 졸업 후 5년 이내에 5회만 시험을 볼 수 있도록 응시 기간과 횟수에 제한을 두고 있다. 장기간 수험 생활로 고시 낭인이 양산되면 국가 인력 낭비를 초래한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 놓인 로스쿨 출신들은 '사회 낙오자' 낙인을 입고 평생 살아가는 만큼 추가 시험 기회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최근에는 5회 탈락한 이들을 일컬는 '오탈자(五脫者)'라는 신조어도 생겼다.

지난 2014년 부산대 로스쿨을 졸업한 뒤 지금까지 5차례 변시에 떨어져 응시 기회가 막힌 탁지혜(37) 씨는 "주위 '오탈자'들이 많은 시간과 비용을 들여 법학 공부를 하고도 공무원 시험 등 다른 진로를 알아보고 있다. 군 입대를 제외하고는 질병, 출산 등 어떤 경우에도 응시 제한에 예외를 두지 않는 평생응시금지 조항은 폐지되어야 한다"고 했다.

오는 24일 9회 변시 합격자 발표를 앞두고도 대한변호사협회와 로스쿨 재학생들은 팽팽한 기싸움을 벌이고 있다. 대한변호사협회는 지난달 보도자료를 통해 "법무사, 세무사 등 법조 유사 직역을 고려하면 국내 법조시장은 포화상태다. 연간 배출 변호사를 1천 명 수준으로 줄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법학전문대학원학생협의회는 최근 성명을 내고 "변시 합격자 결정 시 법조인 수급 상황을 기준으로 삼는 것은 적합하지 않다. 합격률을 응시자 대비 75% 이상으로 높여야 한다"고 맞섰다.

◆고향 떠나는 지역 출신 법조인들

법조인 양성이 로스쿨 체제로 전환되면서 지역 로스쿨에서 배출되는 법조인은 한해 100명을 웃돌고 있다. 기존 사법시험 체제 하에서보다 5배 이상 증가했다. 하지만 수도권 쏠림 현상이 심한 법조시장 구조 상 정작 지역에 자리 잡는 법조인은 많지 않은 실정이다.

지역 로스쿨에서는 애초 입학하는 학생들부터 대구경북 출신이 아닌 경우가 많다는 걸 주된 원인으로 꼽는다. 지역 로스쿨 관계자는 "로스쿨 지원은 출신 학부에 비해 하향 지원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애초에 수도권 대학을 졸업했거나 타지역이 고향인 학생이 많다"고 말했다.

변시 합격 후 6개월간 받는 수습 변호사 자리가 서울에 몰려 있는 것 역시 이들이 수도권으로 향하는 이유다. 지역 로스쿨 재학생은 "대구경북에는 변호사가 10명 이상인 규모 있는 법률사무소가 손에 꼽을 정도"라며 "변호사 채용은 공고를 통해 채용하는 경우보다 알음알음으로 자리를 소개받는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처우가 안 좋은 고용변호사 생활이라도 수도권에서 시작해야 향후 업계에 정착하기 수월하다는 인식이 있다"고 했다.

지역 변호사의 처우가 수도권에 비해 좋지 않은 점도 지역 출신 법조인이 고향을 떠나는 데 한몫한다. 대구의 한 중견 변호사는 "20년 전 초임 고용 변호사 월급이 세후 500만원 정도였다. 현재 대구경북 중소형 법률사무소에 신입 변호사로 들어가면 이에 못 미치는 대우를 받는 경우가 있다"며 "수임료 역시 사건에 따라 다르지만 크게는 30% 정도 지역이 더 낮고, 물가 상승률에 비해 수임료는 많이 오르지 않은 편"이라고 말했다.

수도권 로펌이 점차 몸집을 불리면서 지역 법률시장의 수요를 휩쓰는 점 역시 지역 법률시장이 위축되는 원인 중 하나다. 대구지역 한 변호사는 "수도권 로펌들은 전국을 무대로 사건을 수임한다"며 "대구경북에서 일어난 굵직한 사건이나 지역 주요 인사들이 송사에 연루된 경우 명성 있는 서울 대형로펌을 찾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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