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권용섭의 북한 화첩기행]<15>그리운 금강산, 그러나 ...

소나무로 둘러 싸여 빼어난 경치를 자랑하는 삼일포호수
소나무로 둘러 싸여 빼어난 경치를 자랑하는 삼일포호수

금강산관광은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일흔이 넘은 나이에 열정을 갖고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 완성한 사업이다. 현재 북한에 속한 강원도 통천이 고향인 그는 평생 대북사업에 큰 애착을 보인 끝에 금강산관광 사업을 성사시켰다.

정 명예회장은 1989년 국내 기업인 가운데 최초로 북한을 공식 방문해 '금강산관광 개발 의정서'를 체결했다. 그로부터 9년 뒤인 1998년 아들인 고 정몽헌 현대그룹 회장과 함께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을 만나 '금강산관광 사업에 관한 합의서 및 부속합의서'를 맺었고 한 달 뒤 역사적인 금강산관광이 시작됐다.이 과정에서 정 명예회장은 김정일 위원장의 환심을 얻고 본격적인 남북 교류와 화합의 문을 열기 위해 소 500마리를 이끌고 북한을 찾아 전세계적인 화제를 모으며 영화같은 장면을 연출했다.

삼일포가 훤히 보이는 전망대인 단풍관
삼일포가 훤히 보이는 전망대인 단풍관

"이건 분명히 나의 기행을 도우는 하늘의 뜻일거야". 필자는 금강산을 갈 수 있다는 기대감에 한껏 부풀어 금강산 스케치여행 준비를 했다. 동양화가들에게는 금강산은 너무나 멋진 작품 소재였기 때문이다. 한국 산수화의 본향인 금강산은 역대의 화가 단원 김홍도를 비롯하여 겸재 정선 ,최북, 김응환, 정충섭, 김운겸에서부터 근대작가 소정 변관식에 이르기까지 유명화가들이 금강산을 즐겨 화폭에 담았다. 금강산은 화가들의 좋은 소재로 화첩이나 기록화들이 간간히 발표되면서 미술계를 감질나게 했다.이젠 내 차례이야. 금강산에 대한 많은 작품을 남길수 있다는 욕심이 온 몸을 뛰게했다.

묵으로 화선지에 그린 삼일포
묵으로 화선지에 그린 삼일포

그 후 50년 만에 금강산이 열린 1998년, 우리 일행을 실은 현대금강호가 북한 장전항에 정박했다. 필자는 1만2천봉의 금강산의 아름다운 봉우리와 다양한 전설이 깃든 여러 폭포에도 관심이 있었지만 그보다 먼저 '삼일포지역'을 찾기로 했다. 버스로 12km정도 달려 후천(북강)에 자리 잡은 삼일포는 울창한 소나무 숲에 싸여 있었다.고성군에 속한 삼일포는 호수로 관동팔경중의 하나로 신라 효소왕때 영랑, 술랑, 남석랑,안상랑(4국선인)이 절경에 간탄해 하루에서 3일간 머물며 풍류를 즐긴 곳이라 하여 삼일포라고 불려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삼일포에서 가장 눈에 띠는 김정숙 선전문구
삼일포에서 가장 눈에 띠는 김정숙 선전문구

삼일포에는 장군대와 봉래대, 연화대, 금강문, 몽천, 와우도, 단서암, 무선대, 사선정토, 매향비 등 명소들이 있었다. 소나무사이로 호수를 보며 한 걸음씩 가까이 다가가니 커다란 바위에 글씨하나가 돋보인다. 흰색 음각으로 '위대한 수령님의 가장 충직한 전사였던 김정숙 여사의 혁명위훈....'이라고 새겨놓았다. 인민들에게 선전하고 있는 문구다. '관동팔경' 삼일포·해금강 코스는 삼일포·연화대·봉래대·해금강으로 이어지며 버스와 도보로 왕복 3시간이다. 바위산인 봉래대는 삼일포 호수가 한눈에 들어오는 전망대이다. 둘레길은 '김일성 사적지'로 주변이 말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김정숙 여사의 휴양지였던 만큼 풍경도 수려했다.

휴게소격인 단풍대 주변으로는 장군대, 련화대, 봉래대가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으며 호수가 남북으로 펼쳐진 보였다. 삼일포 호수 가운데에는 소가 누운 형상이라 이름 붙여진 '와우섬' 에는 4신선이 놀고 갔다는 '사선정'이 아련히 보이나 갈수는 없었다. 와우섬 주변에는 작은 돌섬들이 조화를 이루고 있어 화폭을 담기에 최고의 그림구도를 선사하고 있었다. 남쪽 산봉우리 절벽에 신라의 화랑들이 새겼다고 하는 '술랑도 남석행(述郞徒南石行)'이라는 여섯 글자가 있었다.

좋은 경치 안찍고 바위만 찍는다고 경고하던 북한 안내원
좋은 경치 안찍고 바위만 찍는다고 경고하던 북한 안내원

◆삼일포에서 생긴일

주변에 역사적으로 오래된 바위이끼 들을 보니 석화를 즐겨 그리는 아내생각이 났다. 아내에게 그러한 바위를 보여줘야겠다고 근접 촬영을 했다. 이때 김일성 사적지를 안내하는 한 북한 안내원이 다가왔다. 아무도 없는 곳, 나는 뭔가 직접 설명을 들을 수 있겠다 싶었는데 의외의 질문이었다.

"왜 좋은 경치를 찍지 않고 왜 그런 것을 찍습네까"하며 차가운 목소리로 이름이 뭡 네까? 하며 내 가슴에 내 명찰을 손수 뒤집었다. "권,용,섭"하며 숙지를 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바로 내일 부터 나에게 관광금지 명령이 떨어지면 나도 역시 기자들 처럼 억류되는 순차였다. 촬영금지구역도 아니고 내가 필요해서 찍었다며 해명을 하는데 우리 현대 측 반장이 달려왔다. 대변 해줄 줄 알았던 우리 반장도 의외였다. 그도 무조건 안내원의 말을 들으라며 어이 없게도 북측 안내원의 편을 들었다. 이것은 정말 남과 북이 구분되지 않는 이념의 전쟁같았다. 글·그림권용섭 독도화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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