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일상중국] 양회와 ‘돼지고기’의 정치학

서명수 슈퍼차이나연구소 대표
서명수 슈퍼차이나연구소 대표

지난 3월 초순경 후베이(湖北)성 우한(武漢)의 한 아파트단지에 쓰레기차에 실려 온 냉동 돼지고기 봉지가 뒹구는 사진이 웨이보 등 중국 내 SNS를 통해 알려지면서 논란이 벌어졌다. 중국인들의 생필품인 돼지고기를 쓰레기 운반차에 실어 배달할 수가 있느냐는 것이다.

중국 최고지도자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우한코로나 사태' 종식을 선언하기 위해 봉쇄령(1월 23일)이 내려진 우한을 처음으로 다녀간 다음 날이었다. 이날의 돼지고기 배송은 봉쇄령 속에 외부 세계와 단절된 채 감염 공포 속에 돼지고기 등 식재료를 제대로 배급받지 못한 주민들이 '우리도 고기를 먹고 싶다'는 현수막을 내걸고 시 주석 우한 방문에 맞춰 소홀했던 당국의 대책에 항의한 데 따른 것이었다.

그에 대한 화답인지, 시 주석 방문 다음 날 쓰레기차가 냉동 돼지고기를 한 트럭 가득 싣고 한 아파트단지에 도착, 바닥에 돼지고기를 쏟아 내렸다. 식품운반차가 아닌 쓰레기차에 실려 온 돼지고기 봉지를 보고 주민들이 항의하는 등 논란이 확산되자 아파트 관리위 당서기 등이 면직되는 사태도 빚어졌다.

돼지고기는 중국인의 주식이자 생필품이다. 중국에서 '고기'(肉)라고 하면 '돼지고기'(猪肉)다. 중국 요리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탕수육(糖水肉), 동파육(東坡肉), 오향장육(五香醬肉)은 물론 마오쩌둥 주석이 생전에 가장 좋아한 '홍샤오로우'(紅燒肉), 탕수육의 원조인 '궈바오로우'(鍋包肉) 등이 모두 돼지고기가 주재료인 요리다.

그런 중국에서 돼지고기가 최근 '금값'으로 치솟고 있다.

지난해 하반기에 발병한 아프리카돼지열병(ASF)이 중국 전역을 강타하면서 대충 1억3천여 만 마리의 돼지가 살처분되거나 폐사했다. 중국 내 전체 돼지 사육 두수의 30% 수준이다. 중국은 돼지고기 자급 국가가 아니다. 돼지고기를 활용해야 풍성해지는 중국인의 식탁은 중국을 세계 최대 돼지고기 생산·소비국이자 수입국으로 만들었다. ASF가 수그러지지 않고 있는 데다, 코로나 사태는 돼지고기 파동을 부추기고 있다. 부자와 가난한 자, 권력자와 서민을 가리지 않는 중국인의 식욕은 돼지고기 가격을 천정부지로 끌어올리고 있다. 코로나19가 다소 진정된 요즘의 돼지고기 가격은 지난해 동기 대비 116% 상승했다. 중국 국가통계국이 지난 4월 발표한 올 1분기 중국 내 돼지고기 생산량은 1천38만t으로 전년 동기 대비 30%나 줄어들었다. 돼지고기 품귀 현상으로 시장에서는 1인당 한 근(500g) 내지 1㎏으로 제한하는 식육점도 생겼다. 돼지고기는 마이너스 성장으로 돌아선 중국 경제지표를 악화시키는 물가 상승의 주범이다.

돼지고기 가격이 폭등하자 전자상거래 업체인 '알리바바'는 물론이고 경쟁업체인 '징둥'(京東)과 '헝다'(恒大)그룹, '비구이위안'(碧桂園), '완커'(萬科) 등 대형부동산 그룹들까지 양돈업 진출에 나섰다. 바야흐로 중국에서는 돼지고기 확보가 ASF와 코로나 사태 이후 중국 경제의 화두가 됐다.

'알리바바'는 돼지 사육과 유통에 자신들이 앞서 있는 인공지능(AI) 기술과 IT 기술을 적용하겠다는 사업 계획을 발표했지만 세계적인 대기업이 양돈업에 뛰어든다는 것은 장기적으로 중국에서의 양돈업이 수익성이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돼지고기를 제때 공급하지 못하면 민심은 요동치게 마련이다. 경제 대국 중국이 생필품인 돼지고기로 인해 중국공산당의 집권 시스템 자체가 위협받을 수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ASF가 휩쓴 2019년 하반기, 후춘화 부총리는 "돼지고기 공급을 충분히 확보하는 것은 경제 문제일 뿐 아니라 긴박한 정치 임무"라면서 "돼지고기 공급 문제는 샤오캉(小康)사회 달성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고 당과 국가 이미지에 손상을 입힐 것"이라고 언급했다. 우리나라 같으면 불가능한 '대기업의 양돈업 진입'을 내버려두거나 독려하는 것은 중국 당국이 그만큼 돼지고기 확보에 사활을 걸고 있다는 방증이다.

코로나 사태가 야기한 '미·중 냉전'의 재점화도 돼지고기 확보에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돼지고기 수입의 상당량을 차지하는 미국산 돼지고기 수입이 막힐 수도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 사태 속에 열리고 있는 중국의 '마스크 양회'가 돼지고기 대책도 수립할 수 있을지 번외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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