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친 것 같다. 광고인이 광고하지 말라니. 대한민국 마케터들의 욕이 여기까지 들리는 듯하다. 진짜 이 글을 보고 광고를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굶어 죽을 것이다.
지금 독자의 머릿속에는 이런 문장이 있을 것이다. '에이 말이 그렇지 뭐 결국 광고하라는 글이겠지'. 하지만 재미있는 사례가 있어 소개한다.
나는 현재 광고계에서 10년 정도 뒹굴고 있다. 그러면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다. 그리고 그들 자체가 독특한 브랜드였다. 아이러니한 것은 기를 쓰고 광고해도 안 되는 브랜드가 있다는 것이다. 반대로 광고하지 않아도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브랜드가 있었는데 바로 한 변호사의 경우이다. 어떤 비법이 있길래 광고하지 않아도 고객들이 몰려드는 것인지 궁금했다
그 변호사는 대구의 가장 큰 법무법인에 일하다가 독립하게 되었다. 개인 법률사무소를 차리시면서 광고에 대한 고민이 시작되었다. 법무법인에 있었을 때는 소속 변호사였지만, 독립하려니 마케팅이 문제였다.
당연히 많은 광고회사의 영업이 들어왔다. "온라인 키워드 광고를 하셔야 합니다! 네이버에서 검색할 때 변호사님을 1순위 노출로 만들어 드리겠습니다!"와 같은 제안이 쏟아졌다. 그들의 말을 들으면 지금 당장 의뢰인이 줄을 설 것 같았다. 내일 당장 통장에 돈이 수북하게 쌓일 것 같았다.
하지만 변호사가 선택한 마케팅은 사무실 홈페이지 제작이 전부였다. 그것도 최소한의 기능만 넣은 정말 최소한의 홈페이지였다. 사실 요즘 젊은 변호사들의 홈페이지를 보면 정말 화려하다. 성형외과 혹은 엔터테인먼트의 홈페이지를 보는 것처럼 찬란하다. 변호사를 일종의 스타로 보이게 해 의뢰인이 연락하고 싶게끔 만드는 것이다. 이외에도 키워드 광고, 블로그 광고 등 다양한 마케팅 방식을 활용한다. 그에 반해 그 변호사는 의뢰인이 연락할 최소한의 창구를 만든 것이 전부였다.
대한변호사협회에 따르면 2019년 12월 16일, 변호사의 수가 3만 명을 돌파했다고 한다. 이 수치는 법률 상담의 문턱을 낮추는 효과가 있지만, 분명히 음지도 동반하게 된다. 수임료에 눈이 멀어 의뢰인의 인생을 고려하지 않는 고객 유치가 바로 그것이다. 우선 사무장과 상담을 하게 하고 무조건 이길 수 있다는 식으로 사건을 수임한다. 그리고 계약을 한 후 의뢰인은 변호사와 연락이 잘 안 된다. 그리고 불안해한다. 변호사는 사무장에게 들은 내용으로 재판장에 나가는 일도 있다. 단기적으로는 이렇게 해야 더 많은 사건을 수임할 수 있기 때문이다.
포털 사이트에서 검색했을 때 1순위로 노출되는 사무실 역시 마찬가지이다. 사실 돈만 많이 주면 7번째로 노출된 브랜드가 1순위로 보일 수 있다. 당연히 의뢰인은 많아지고 변호사는 많은 사건을 수임하게 된다.

그렇다면 광고 한번 하지 않은 그 변호사는 어떤 전략을 펼쳤길래 성공했을까?
첫째, 그저 기본에 충실했다.
비록 소수이지만 찾아와주시는 분들에게 최대한의 만족을 드린다는 전략이었다. 의뢰인과 직접 상담을 하며 증거 확보, 심리 상태까지 챙겼다. 사실 법률 분쟁으로 고통받는 의뢰인들은 심리적으로 상당한 압박감을 받는다. 그때 변호사와 통화가 잘 안 된다든지 사무장하고만 일을 진행한다면 더욱 초조해진다. 그 변호사는 의뢰인 한 명 한 명과 일일이 소통해가며 만족도를 높였다.
기본에 충실한 전략은 막강했다. 이 정도 변호사라면 내 지인에게 소개해주고 싶다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특히 비즈니스 간의 분쟁이 많은 사업가에게는 소개 후 기업 고문 변호사로서 일하는 경우가 늘어났다. 사람의 입이 가장 무섭다는 말이 있다. 마케팅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그 브랜드가 참 별로라는 소문도 무섭지만, '그 사람 참 잘해'라는 말도 무섭다. 그래서 지인에게 받는 혹은 해주는 추천이 정말 힘이 센 것이다.
둘째, 탐구심을 잃지 않았다.
일을 반드시 해야 하는 대상으로 보지 않고 탐구의 개념으로 봤다. 왜 이런 사건이 벌어지게 되었을까? 상대편의 머릿속은 어떤 구조로 되어 있을까? 그의 행동 패턴을 의사처럼 해부하고 관찰해갔다. 마치 추리 소설 속에 자신이 들어와 있는 것처럼 상상하고 행동했다. 일이 아니라 탐구의 과정이라 생각하니 사건을 대하는 자세가 달랐다. 노동이 아니라 본인의 호기심을 해소해가는 과정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밤 10시에도 의뢰인에게 전화해 물어보기도 했다. 그러면 의뢰인은 '나의 변호사가 이렇게 늦은 시간까지 나를 걱정하고 있는구나!'라는 인상을 받는다. 이것이 정말 좋은 광고이다. 달콤한 광고 카피가 없이도 그 브랜드를 좋아하게 만드니까. 이렇게 변호사와 의뢰인이 완벽히 소통하니 이런 고객도 생겨났다. '설령 이 재판에서 져도 괜찮겠다. 변호사가 이 정도로 최선을 다해줬는데 이 이상의 결과는 없을 것 같다'라고 말이다.
셋째, 고객이 자신이라고 생각한다.
식당에서 내놓은 음식이 상했을 때 우리는 이렇게 생각한다. '내가 가족이라면 이런 음식을 내놓았을까?' 나의 문제, 내 가족의 문제라고 생각하면 태도가 달라진다. 더 깊숙하게 그 문제를 바라보게 된다. 저 사람이 재판에서 지는 건 내가 지는 것이라는 생각으로 사건에 임했다. 그의 태도가 브랜드 충성도를 불어온 것이다.
넷째, 집요함을 놓지 않았다.
사실 집요함은 마케팅의 어머니이다. 가정에 어머니가 없으면 안 되는 것처럼 집요함이 있어야 위대한 결과가 나타난다. 근무 시간 이외에도 수임한 사건에 대해 고민하고 대응 방법을 찾으려는 집요함이다. 광고인 역시 마찬가지다. 금요일 저녁 지인들과의 회식 자리 때도 아이디어를 생각하는 광고인이 있다. 눈은 상대방 얼굴을 보고 있지만, 머리로는 아이디어만 떠오를 때가 있다. 혹은 상대방이 뱉은 말을 가공해 아이디어와 어떻게 연결할까 생각할 때도 있다. 그 변호사 역시 마찬가지였다. 의뢰인의 말 속에서도 집요하게 아이디어를 구했다. 투자하는 시간이 많으니 사건의 해결 가능성은 자연스럽게 올라갔다.
내가 위에 나열한 네 가지 법칙은 지극히 심심하다. 마치 건강한 비결이 뭐냐는 질문에 '운동하고 술·담배를 하지 않는다'와 같은 대답이다. 그걸 모르는 사람은 없다. 행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늘 기본을 힘들어한다.
만약에 그 변호사가 열심히 광고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포털에서 검색했을 때 가장 먼저 나오고 블로그 대행업체에 일을 맡겼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블로그에는 영혼 없는 광고성 글이 올라왔을 것이다. 그리고 다른 법무법인과 차별성이 없는 one of them 브랜드가 되었을 것이다. 물론, 단기적으로는 많은 수임을 해서 더 큰 돈을 벌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찾아온 의뢰인들이 과연 변호사에게 만족하고 떠날까? 그렇지 않다. 한 번은 의뢰하되 다시는 맡기고 싶지 않은 변호사가 되었을 것이다.
진짜 맛집은 새로운 고객을 유치하는 곳이 아니다. 지난주에 왔었던, 지난달에 왔었던 손님이 다시 찾는 집이 진짜 맛집이다. 팔리는 브랜드가 되고 싶다면 광고보다 기본에 충실하라. 업의 본질에 충실하라. 업의 본질이 먼저이고 광고는 그다음 문제이다.

㈜빅아이디어연구소 김종섭 소장.
'광고인의 생각 훔치기' 저자
광고를 보는 건 3초이지만 광고인은 3초를 위해 3개월을 준비한다. 광고판 뒤에 숨은 이야기들을 독자들과 공유하기 위해 [김종섭의 광고 이야기]를 연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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