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최재목의 아침놀] 젊음이여, 뒷배 없이 홀로서 가라

최재목 영남대 철학과 교수
최재목 영남대 철학과 교수

"내 고장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 이 마을 전설이 주저리주저리 열리고…." 이육사는 이렇게 노래했으나, 어쩌랴! 이 땅엔 한동안 주저리주저리 스토리텔링할 희망의 청포도도 전설도 없을 듯하다. 지속되는 코로나 사태, 마이너스 성장, 취업난으로 젊음은 불안한 시대를 건너고 있다. 비대면 온라인 시대가 정착하는 지금은 현대가 저무는 가을인가, 새로운 시대를 알리는 봄인가.

심정이 착잡한 요즈음, 젊은 세대 앞에 서면 좀 난감하다. 그들에게 무슨 말을 해줄 수 있을지 자문해 본다. 솔직히 '이렇게 저렇게 살아라!'며 조언할 용기도 언어도 부족하다. "그냥, 살아봐!"라며 혼자 속으로만 중얼대고 있다. 왜냐하면 더 이상 기성세대에게 청년들이 기대할 것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제부터 "뒷배 없이 그냥 홀로서 가라!"고 권하고 싶다. 뒷배란 '보이지 않게 뒤를 봐주는 사람'(후견인), '배후'(백), '부모 찬스' 같은 것이다. 이런 것에 젊음은 개의치 않아야 한다.

길의 좌표를 잡던 창공의 별도, 아우라 있는 어른들의 덕담도 사라졌기에, 깜깜한 삶의 길을 홀로 걸어가야 한다. '차라리 잘됐다'고 나는 생각한다. 새로운 길은 새로운 정신으로 밟아야 하기 때문이다. 낡은 사유는 좀 비껴 서고, 신선한 기풍이 잰걸음할 수 있도록 길을 터 주어야 한다. 비록 미숙하고 불완전한 걸음이더라도, 젊음이 이 시대의 전면에 나서도록 도와야 한다.

하여, 젊음이여! 어떤 기존의 이념에도, 철학에도, 도덕에도, 가치에도 기대지 말고 당당히 자신의 삶을 살아갔으면 한다. 지나간 건 모두 저네들의 삶이었고, 이제부터는 당신들의 몫이라 생각하라. 폐허와 황무지 위에 새로 집을 지을 각오를 하자. 무근거・맨바닥에서 출발해야 한다. 직업도, 결혼도, 인생도 스스로 구상하라. 기성세대들 신경 쓰지 말고, 자신의 양식과 판단을 믿고, 서로와 서로의 지성을 연결하며, 해결해 가는 게 차라리 낫다.

더 이상 기성세대에게 기대고 배울 것은 없다. 교육도, 정치도, 관습도 이제 신물 나지 않는가. 그 무엇에도 기대지 말고, 무소의 뿔처럼 홀로서 가라. 백척간두에서 '진일보'해야 한다. 진일보의 '진'은 나아갈 '진'(進)이 아니라, 참 '진'(眞)이어야 한다. 발 디딘 곳의 진실을 스스로 찾고, 삶을 위한 진리를 캐물어라. 그 방법론은 원효가 말한 저 "두 변을 떠나되 그 중간이 있는 것도 아니다"라는 '이변이비중'(離邊而非中)을 권하고 싶다.

이쪽도 저쪽도 떠나라(離邊)! 그렇다고 그 둘을 아우르는, 중간이라는 또 하나의 지점이 있다고도 생각 말라(非中). 이쪽도 저쪽도, 그렇다고 둘을 아우를 중간마저도 차 버려라. 둘이건 하나건 모두 환상이다. 진실은 그대들 자신의 '삶'이리라. 어떤 개념과 사상은 단지 그것만을 이야기한다. 다른 편을 포용하지 않는다. 내 생각을 담을 언어와 그것을 펼칠 필드는 그대들이 만들어야 한다.

쉽게 무언가를 선택하는 것은 아무 생각 없이 줄 서는 것과 같다. 어떤 줄이든 같은 유니폼으로 같은 방향을 쳐다보는 것처럼, 편향성을 갖는다. 줄 서는 것은 편하나 그것이 썩고 끊어지면 함께 몰락한다. 고독하고 불안할 땐 패거리 속에 몸을 숨기고자 한다. 이것은 단독자의 자유를 버리고 도피하는 것이다. 그때 집단적 이념과 가치의 노예로 전락하고 만다.

그렇다. 자유로우려면 고독을 견딜 수 있어라! 기댈 뒷배를 걷어차라! 기존의 가치와 이념, 관습과 도덕을 일단 의심하며 새로 모색하라. 벽 쪽이 아니라 나를 향해 제사상을 차리라던 해월 최시형의 '향아설위'(向我設位)처럼, 젊음 쪽에서 세상을 새로 읽는 법을 찾아야 한다. 쳐다보는 관객의 입장에서 해방되어, 스스로가 배우로 살아갔으면 한다. 그러려면 "안 하는 편을 택하겠다"(I prefer not to)는 필경사(筆耕士) 바틀비처럼, 기성세대의 명령에 무행위[無爲]로 맞서며, 자신의 길을 찾아 나서자.

뒷배 없이 홀로 갈 수 있는 젊음이 희망이다. 칠월, 꽃보다 더 붉어야 할 젊음 앞에 몇 자 고백해 본다.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