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대한민국 헌법 1조)
이는 대한민국 국민 모두의 뇌리에 깊이 박힌 대한민국 헌법 조문이다. 2018년 헌법재판소가 창립 30주년을 맞아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국민이 가장 좋아하는 헌법조문'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이 조문 외에 우리는 헌법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헌법 개정에 대한 논의가 이따금 언론을 통해 등장하지만 국민적 합의는 요원하다. 일단 헌법이 어떤 가치를 지니며, 어떤 연유로 어떻게 제정됐는지 알아야 비로소 헌법 개정을 논할 수 있을 텐데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신간 '김영란의 헌법 이야기'는 일반 독자를 위한 헌법 기본서의 역할을 해줄 것으로 기대된다.
이 책은 '인간의 권리를 위한 투쟁의 역사'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부제처럼 이 책은 헌법이 제정되기까지의 과정을 짚어보며 헌법이 담은 가치를 말한다. 헌법 제정 역사에 굵직한 획을 그은 영국, 프랑스, 미국, 독일의 헌법이 제정된 현장을 차례대로 소개하고 마지막으로 우리나라 헌법 제정과 개정에 관한 역사를 다룬다. 이 과정에서 왜 그토록 많은 이들이 헌법을 위해 싸웠는지, '법에 의한 지배'는 무엇을 의미하는지, 헌법 제정이 우리 삶에 어떤 변화를 가져왔는지를 전한다.
저자는 고대 그리스 시대 민주시민을 위한 공연에서 영감을 얻어 처음부터 끝까지 한 편의 연극을 진행하듯 헌법 제정의 현장을 펼쳐보이는 서술 방식을 택했다. 아울러 소설 '로빈 후드의 모험' '레 미제라블', 영화 '1987' 등 작품 속에 자연스럽게 헌법을 녹여내 헌법이라는 딱딱한 주제에 대한 거부감을 풀어주었다. 독자들이 궁금할 만한 지점을 질문하고 그에 답하는 형식을 취해 술술 읽힌다는 것도 장점이다.
헌법은 왜 탄생했을까. 국가의 통치조직의 기본원리를 규정하고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해서다. 그렇다면 헌법이 존재하기 전에는 어떤 모습이었던걸까. 불과 200년 전 동·서양을 망라한 모든 국가의 기본 통치 체제는 전제군주제였다. 군주인 왕은 국가의 모든 통치권을 장악하고 입법, 사법, 행정 등 모든 권한을 단독으로 행사하는 존재였다.
우리는 20세기 초까지 전제군주제를 유지했지만 유럽과 아메리카에서는 왕의 권력을 헌법으로 제한하거나 왕을 축출하고 공화정을 세우려는 움직임이 나타났다. 영국의 존 왕에 맞서 싸운 귀족들은 왕 대신 법의 지배를 주장하며 대헌장에 서명을 요구했다. 프랑스의 다수의 민중은 루이 16세에게 구체제의 모순을 개선하라고 요구했고 프랑스 혁명을 통해 인권선언을 만들었다. 대영제국의 식민지였던 미국의 식민지인들은 '대표 없는 곳에 과세 없다'고 주장하며 영국의 식민지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정부를 세워 독립했다. 사람이 아니라 법이 국가를 통치하는 시대가 도래했고, 이는 민주주의로 발전됐다.
그러나 우리 헌법은 본연의 역할을 하기보다 독재 정권과 권력자에 의해 국민을 억압하고 옥죄는 도구로 사용되기도 했다. 이에 1987년 제정된 헌법 제10호는 그와 같은 불행한 역사를 반복하지 않으려 헌법 개정안에 '국민투표'라는 조항을 추가로 달아 두었다. 그러나 이는 국민에게 헌법이 어렵고 엘리트만이 다룰 수 있는 대상으로 여겨지는 역효과를 낳았다. 헌법은 그렇게 평범한 시민과 멀어졌다.
2000년대 중반 이후 현행 헌법이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상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비판 속에 개헌 논의가 설득력을 얻기 시작했다. 이후 개헌에 대한 적극적 행동도 있었으나, 아직 어떤 합의를 도출하지 못한 채 대한민국 헌법 개정은 표류 중이다. 만약 현시점에서 헌법 개정이 이루어진다면 헌법은 또다시 일반 시민들의 목소리를 제대로 담지 못한 채 학자와 정치가의 생각대로 결정될지 모른다.
저자 김영란은 대한민국에 개헌이 필요하다면 반드시 지키고 담아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 함께 탐구하자고 독자에게 손을 내민다.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우리 모두는 개헌에 책임이 있고 헌법에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 책을 읽은 독자는 스스로에 묻게 된다. 앞으로 우리 헌법이 담아야 할 가치가 무엇인가.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헌법 개정에 내가 참여할 방법은 무엇인가. 256쪽, 1만6천원.
▷저자 김영란은
1956년 부산 출생. 서울대 법대 재학 중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1981년부터 판사로 일했다. 2004년 국내 최초 여성 대법관이 되었고, 6년간 대법관으로 재직하며 '소수자의 대법관'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2011년부터 2012년까지 국민권익위원회 위원장으로 일하면서 '김영란법'으로 알려진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을 입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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