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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 전 오늘] 고령 금산재에 있는 위령비, 왜 세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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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고령군 대가야수목원 인근 금산재에 있는 위령비.
경북 고령군 대가야수목원 인근 금산재에 있는 위령비. '가야산도사의 산행과 야생화 그리고 여행' 블로그 캡쳐

경북 고령군 대가야수목원 인근에는 '금산재'라고 하는 고개가 있습니다. 예전에는 대구와 고령을 잇는 유일한 길이었고, 광주대구고속도로와 다른 도로가 뚫려있는 지금도 노선버스가 다니는 등 금산재는 대구와 고령 사이의 주요 도로로 기능하는 곳입니다.

그런데, 이 금산재를 지나다보면 한 켠에 위령비 하나가 서 있습니다. 그 위령비는 50년 전 일어난 한 사고에 의해 세워지게 됩니다.

1970년 7월 21일자 매일신문 1면에 실린 금산재 버스 사고 기사. 매일신문 DB
1970년 7월 21일자 매일신문 1면에 실린 금산재 버스 사고 기사. 매일신문 DB

1970년 7월 21일자 매일신문 1면에는 18일에 금산재에서 발생한 버스 교통사고를 크게 실었습니다. 해인사를 출발해 대구로 향하던 버스가 금산재를 넘어가던 중 장마로 물러진 길에 바퀴가 미끄러지면서 90m 낭떠러지로 구르면서 24명이 숨지고 43명이 중경상을 입는 대형 참사가 일어났습니다.

금산재 버스 사고를 상세히 보도한 1970년 7월 21일자 매일신문 7면. 매일신문 DB
금산재 버스 사고를 상세히 보도한 1970년 7월 21일자 매일신문 7면. 매일신문 DB

경찰 조사 결과 사고 원인은 차량의 정비 불량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안타까운 사연들도 소개됐습니다. 고령군에서 달성군으로 이사를 가던 가족이 버스에 몸을 실었다 모두 다친 사연, 아버지 생신 가던 길에 참변을 당한 사연 등등 버스 탑승객의 갖가지 사연도 소개됐었습니다.

지금도 이 정도 사고는 '참사'로 불릴만한 대형 사고 입니다. 앞으로 금산재를 넘어가시는 분들은 이 사고를 생각하면서 안전운전 하시길 바랍니다.

여성의 사회진출을 다룬 1970년 7월 21일자 매일신문 5면 기사. 매일신문 DB
여성의 사회진출을 다룬 1970년 7월 21일자 매일신문 5면 기사. 매일신문 DB

여성의 사회진출 문제는 지금도 많은 논쟁거리를 안겨주는 주제입니다. 남녀평등과 직결되는 주제다 보니 지금도 여성의 노동과 그에 따른 임금 격차의 문제는 아직도 첨예한 논쟁의 대상입니다.

50년 전에는 어땠을까요? 여성의 사회진출이 지금보다 훨씬 더 어려웠다는 것은 안 봐도 비디오일 겁니다. 기사를 보면 당시 취업인구 중 36.6%가 여성이지만 대부분 농어업에 취업하고 있고, 고등교육 졸업자의 64.6%가 가정에 머물고 있어 사회가 여성들이 제 능력을 쉽게 발휘하지 못하게 하는 것 같아 아쉽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50년 전부터 '동일한 일에 동일한 대우'라는 외침이 있었지만 지금도 완벽하게 이뤄지지 않고 있죠. 50년 전에 비해 점점 나아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여성의 일자리, 사회진출 문제에 있어서는 끊임없는 논의가 진행돼 점점 나아가는 방향으로 가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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