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인이 부끄럼 많다고요?

영국인들이 "We are shy."라고 할 때마다 터무니없어했다. "아니, 키 크고 덩치 큰 서양인이 부끄럼을 탄다고?"라며 고개를 갸웃했다. 서양인에게 동양인은 정말로 어려 보이듯, 서양인은 모두 활달하고 사교적이라고 짐작한 거다. 5년을 산 미국에서는 마주치는 사람마다 웃으며 인사를 하던데, 매일 딸의 등굣길에서 만나는 영국 여인들은 그렇지 않았다. 늘 자기들끼리 인사하고, 같은 사람들끼리 모여 얘기를 나눴다.
영국인은 친절하지만 비사교적이고, 예의바르지만 쌀쌀맞고, 유머러스하지만 과묵하다. 수줍어서 낯선 사람에게 먼저 인사를 못한다. 내성적이어서 차갑고 무뚝뚝하게 비치고, 소극적이라서 표현이 애매모호하고 단호하지 않다. 그러기에 새로운 사람과 인사할 때는 '소개시켜주는 사람'이 있어야 하고, 대화할 때는 '차 한 잔'이 있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영국에 산 지 반년쯤 지나서야 딸은 친구가 생겼고, 나는 딸 친구의 엄마와 차 한 잔을 나눈 후에야 겨우 안면을 텄다.
그들은 만나면 언제나 날씨 얘기부터 한다. 마주하는 것이 어색하고, 익숙하지 않은 사람과는 대화하기 어렵고, 무슨 얘기를 해야 할지 난감해서다. 영국 날씨는 변화무쌍하게 수시로 변해서 공통 화제로 적합하지만, 하루에도 몇 번씩 모두 날씨 얘기를 꺼내는 게 흥미롭다. 그들은 말이 필요 없는 시간을 좋아하는 것 같다. 걷기를 좋아해 휴일에도 걷고 휴가를 가서도 걷는다. 아무 것도 없는 시골길을 혼자 자전거를 타고 간다. 집에서 정원을 가꾸는 일은 온 국민이 즐기는 취미다. 영국인은 이렇게 말없이 조용조용 산다.
버스에서 외국인이 오랫동안 큰소리로 통화를 했다. 사람들은 낯선 사람과 말을 섞고 싶지 않으므로 아무도 말을 하지 않는다. 불편해하면서도 그저 눈을 내리깔고 무시하거나 눈살을 찌푸리기만 한다. 늦은 저녁, 버스 안에서 취객이 하모니카를 부는데, 서로 눈빛을 교환하며 무언의 동의를 주고받을 뿐 아무도 말을 안 한다. 대책은 승객을 대신해 운전기사가 정중하게 부탁하는 거다. 딸의 어릴 적 친구가 얼마 전 클럽에서 싸움을 했다는데, 상대방의 눈을 오래 쳐다본 것이 원인일지도 모르겠다. 눈 마주치는데 익숙하지 않으므로, 술 취한 젊은이들은 "뭘 쳐다보는데?" 하다가 자주 싸움을 한다고 하니.
영국 집은 바깥보다 안이 더 예쁘고, 앞마당보다 뒷마당이 더 크고 좋다. 그들은 가까운 가족과 친구들을 집으로 부르고, 집에서는 서로의 감정을 솔직히 드러내며 사적인 면을 공유한다. 가까운 사람에게는 상당히 열려 있고 친근하며, 놀랄 정도로 따뜻하다. 밖에서는 보이지 않는 집안과 뒷마당처럼, 영국인의 이런 모습은 뒤에 가려져 있어 영국을 방문하는 외국인은 보기 어렵다.
영국인은 곤란한 이야기는 에둘러서 말하고, 불평은 아예 말하지 않는다. 종종 손으로 쓴 카드로 표현하고, 자주 꽃으로 마음을 주고받는다. 친구가 되기는 어렵지만, 한번 친구가 되면 평생 친구가 된다.
이제 우리는 친구를 집으로 부르지도 친구 집에 가지도 않는다. 손 편지와 축하 카드는 사라진지 오래다. 만남은 모두 카페에서 갖고, 모임은 전부 식당에서 해결한다. 죄다 마음 통하는 친구 하나 없다고 하는데, 그들에겐 우리가 이상하지 않을까?
문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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