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진중권의 이른 아침에] 두 가지 광신

종교적 광신이 기독교 욕보이듯
정치적 광신은 보수주의 욕보여
중도로 외연을 넓히려는 통합당
보수 먹칠하는 세력과 갈라서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사랑제일교회 전광훈 목사가 17일 오후 서울 성북구 사랑제일교회 사택을 나와 성북보건소 차량에 탑승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사랑제일교회 전광훈 목사가 17일 오후 서울 성북구 사랑제일교회 사택을 나와 성북보건소 차량에 탑승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코로나바이러스가 수도권을 중심으로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다. 과거와는 상황이 완전히 달라 보인다.

이미 전문가들의 경고가 있었다. 이를 무시하고 7월 말에 교회 내 소모임 금지 조치를 해제하고, 섣불리 쿠폰까지 쏴가며 여행을 장려한 것이 실책이었다. 바이러스를 벌써 다 잡은 것처럼 그릇된 메시지를 낸 대통령의 책임도 적지 않다.

그러나 그와 별도로 8·15 광화문 집회를 연 극우 세력의 행태는 짚고 넘어가야 한다. 물론 광화문 집회가 코로나바이러스 2파를 일으킨 것은 아니다. 집회 이전에 이미 대규모 확산의 조짐은 나타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사실이 이번 집회를 강행한 이들의 책임을 면하게 해주는 것은 아니다. 그런 조짐이 보였기에 집회는 자제했어야 한다.

광화문 집회가 현재 코로나바이러스의 최대 클러스터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전광훈 목사, 주옥순 대표, 차명진 전 의원, 유튜버 신혜식 등 주도자들부터 줄줄이 확진됐다. 집회와 관련해 벌써 100명 이상의 확진자가 나왔다. 그것도 전국에서 나오고 있다. 집회에서 감염된 이들이 바이러스를 전국으로 퍼뜨리고 있는 것이다.

더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사랑제일교회의 행태다. 이미 800여 명의 확진자를 냈음에도 불구하고 외려 방역에 극렬히 저항하고 있다. 검사를 거부하고, 격리 지시를 어기고, 격리 중 도주를 하고, 심지어 "너도 걸려 보라"며 보건소 직원을 껴안고 침을 뱉는 일까지 있었다. 신천지 교단도 이러지는 않았다. 대체 왜들 그러는 걸까? 광신 때문이다. 그 배경에는 먼저 종교적 광신이 있다. 전광훈 목사의 말이다. "만약 바이러스에 걸린 사람이 있다면 다음 주 예배에 나오라. 주님이 다 고쳐 주신다." "우리는 병에 걸려 죽어도 괜찮다. 우리는 하늘나라가 확보된 사람들이다. 목적이 죽는 것이다." 그 교회에서 대규모 감염이 일어나는 것은 시간문제였던 것이다.

거기에 정치적 광신이 중첩된다. "이미 대한민국은 북한의 김정일 통치하에 들어갔고, 또 북한의 김정은이 오더를 내리면 청와대가 그대로 받아서 시행하는 겁니다." 목사가 이러니 그를 신으로 아는 신도들이 검사와 격리를 공산정권에 의한 탄압과 구금으로 여겨, 나라 구하는 각오로 방역에 극렬히 저항하게 된 것이다.

이 두 가지 광신은 로고스(이성)와 에토스(윤리)를 파괴한다. 가령 '예배로 바이러스를 치료한다'거나, '대한민국이 김정일 통치를 받고 있다'는 말은 성한 정신으로 할 수 있는 얘기가 아니다. 나아가 이 위험한 시기에 집회를 열고 방역을 거부해 동료 시민들을 위험에 빠뜨리는 것 역시 사회상규에 현저히 위배되는 행위다.

광복절 일부 보수단체가 주도한 광화문 집회에 참석했던 차명진 전 의원이 19일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진 판정을 받았다. 차 전 의원은 국내 유명 정치인이 코로나19에 감염된 첫 사례로, 국회 안팎에선 이번 사태의 여파를 가늠할 수 없다는 불안감이 확산하고 있다. 사진은 차 전 의원이 광복절 광화문 집회에 참석한 김문수 전 지사와 얼굴을 밀착한 채 찍은
광복절 일부 보수단체가 주도한 광화문 집회에 참석했던 차명진 전 의원이 19일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진 판정을 받았다. 차 전 의원은 국내 유명 정치인이 코로나19에 감염된 첫 사례로, 국회 안팎에선 이번 사태의 여파를 가늠할 수 없다는 불안감이 확산하고 있다. 사진은 차 전 의원이 광복절 광화문 집회에 참석한 김문수 전 지사와 얼굴을 밀착한 채 찍은 '인증샷'. 연합뉴스

이 노골적인 반(反)사회성이 바로 사이비 종교의 특성이다. 사이비 교주들은 신도들의 광신을 이용해 스스로 신이 되기 마련이다. 전광훈 목사는 한술 더 뜬다. "하나님 까불면 나한테 죽어." 최근 개신교 일각에서도 그를 이단으로 규정하고 나섰다. "전 목사는 이단성이 있는 이단 옹호자로 규정함이 가한 줄 안다."

종교적 광신이 기독교를 욕보이듯이 정치적 광신은 보수주의를 욕보인다. 미래통합당에서는 뒤늦게 이들 세력과 선을 그으려 했지만 때는 늦어버렸다. 더불어민주당에서는 광화문 집회의 책임을 엉뚱하게 통합당에게 뒤집어씌웠다. 김문수, 차명진, 김진태, 홍문표 등 통합당 전·현직 의원들이 집회에 참석한 이상 발뺌하기도 뭐하게 됐다.

통합당의 책임이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다. 저들은 광화문에서 '건국절' 집회를 하려 했고, '건국절' 기획은 통합당의 전신인 새누리당에서 시작한 것이기 때문이다.

최근 통합당에서 중도로 외연을 넓히기 위해 여러 시도를 하는 것은 평가할 만하다. 하지만 그 노력이 바라는 성과로 이어지려면, 우선 보수의 얼굴에 먹칠을 하는 이들 혐오 기피 세력과 명확히 갈라설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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