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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춘추] 신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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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민 시인· 도서출판 브로콜리숲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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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민 시인·도서출판 브로콜리숲 대표

차를 운전해 가다가 신호등이 초록 불에서 빨간 불로 바뀌면 차들은 멈춰 서야 한다. 그 뒤를 달려오던 차들도 나란히 줄지어 멈춰 서야 한다. 이것은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신호이자 엄숙한 약속이다. 이를 어기면 사람이 다치거나 목숨을 잃기도 하니까 큰일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약속을 지킨다. 물론 안 그런 사람도 꼭 있긴 하다.

다시 신호등이 빨간 불에서 초록 불로 바뀌기까지 짧다면 짧은 그 시간 동안 차 안에 있는 운전자들은 무엇을 할까? 뚫어져라 신호등만 보는 사람(실은 멍한 상태일 수도 있다), 휴대전화를 들여다보는 사람, 멀리 있는 상대방과 통화하는 사람, 일행과 수다 삼매경인 사람, 차 안을 감싸고 있는 노래에 푹 빠져 감성 충전 중인 사람(짐작이다), 거울을 보면서 눈 화장하는 사람, 마스크를 다시 고쳐 쓰는 사람, 차창 밖을 두리번거리다 나와 눈을 딱 마주치는 사람(반갑습니다) 등 각자 다양한 모습으로 신호가 바뀌길 기다린다.

이윽고 신호등이 빨간 불에서 초록 불로 바뀐다. 그런데 맨 앞에서 신호 대기 중이던 차량 운전자가 휴대전화에 푹 빠져 있다. 곧바로 경적을 울리지 않은 채 뒤차 운전자가 기다린다. 경적을 울릴까 생각하다가 신호가 바뀌자마자 경적을 울려대는 운전자에 대한 안 좋았던 기억 때문에 참는다. 조금만 참으면 앞차 운전자가 신호 바뀐 걸 알아채고 곧 차를 출발 시킬 것으로 예상한다. 거기다 미안하다는 신호로 깜빡이등까지 켜주리라 기대도 하면서….

2, 4, 6, 8초…. 초조하게 기다려보지만 앞차가 꼼짝하지 않는다. 하필 여기는 신호가 매우 짧은 횡단보도다. 급기야 초록 불로 바뀐 걸 뒤늦게 알아챈 맨 앞차만 빠져나가고, 뒤차가 출발하려던 순간 신호등이 빨간 불로 바뀌고 만다. 그때서야 뒤에 선 차들의 화난 경적이 요란하게 울어댄다. 어쩌다 맨 앞에 서게 된 운전자는 의도치 않았지만, 뒤차들의 다소 격한 원성으로 귀가 가려울 수 있다. 좀 전까지 뒤차 운전자였던 사람은 이제 맨 앞 차량의 운전자가 돼 바짝 신경을 곤두세운다. 신호가 바뀌자마자 보란 듯이 출발하리라, 마음먹은 채.

맨 앞에 선 차는 좀 책임감이 있어야 한다. 딴 데 잠시 정신을 팔더라도 얼른 제 자리로 돌아와야 한다. 잘 보고 있다가 신호가 바뀌면 출발해야 한다. 물론 안전한지 좌우를 잘 살펴 안전하게 말이다. 운전자라면 누구나 맨 앞에 서서 신호가 바뀌길 기다렸다가 출발해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극히 짧고 아무것도 아닌 순간이지만 그 순간만큼은 길을 여는 '리더'가 되는 것이다.

맨 앞에 선 자(者)는 책임감이 있어야 한다. 눈앞에서 일어나는 변화와 흐름을 예의주시하고 있다가 그에 맞는 행동을 해야 한다. 그래야만 따르는 사람이 힘들지 않다. 민첩하게 움직일 수 있으면 더욱 좋겠지만 조금 굼뜨더라도 움직여야만 한다.
그래야 길이 생기고 세상은 움직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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