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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칼럼] 방탄소년단, 그리고 오만한 중국

방탄소년단 관련 한국 보도 주목한 중국 환구시보 지면 [환구시보 지면 캡처=연합뉴스]
방탄소년단 관련 한국 보도 주목한 중국 환구시보 지면 [환구시보 지면 캡처=연합뉴스]
김병구 편집국부국장
김병구 편집국부국장

"올해는 한국전쟁 70주년으로, 우리는 항미원조(抗美援朝·미국을 막고 조선을 도움)의 과정에서 겪었던 중국의 희생을 영원히 기억해야 합니다."

중국 정부와 누리꾼들은 방탄소년단(BTS)으로부터 이런 얘기를 듣고 싶었던 것일까. 그렇다면 BTS가 아니라 북한과의 우호 행사에서나 들을 것을 충고해 주고 싶다.

글로벌 아이돌 그룹 BTS의 리더 RM(김남준)은 지난 7일 미국 밴플리트상 시상식에서 "(한국전쟁에서) 우리는 양국이 함께 겪었던 고난의 역사와 많은 남성과 여성의 희생을 영원히 기억해야 한다"고 말했다.

밴플리트상은 한미친선협회인 '코리아 소사이어티'가 1992년부터 한미 관계 발전에 기여한 인물에게 매년 수여하는 상이다. 1950년 미2군단장으로 한국전쟁에 참전한 제임스 밴플리트의 이름을 딴 것이다.

RM의 얘기는 이 상의 취지에도 맞는 지극히 당연하고도 적절한 시상식 소감이었다.

이후 중국 누리꾼들은 중국판 트위터 격인 '웨이보'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BTS를 비난하는 글을 마구 쏟아내기 시작했다.

일부 누리꾼은 '양국이 겪었던 고난의 역사'라는 표현을 문제 삼으며 "중국인이 큰 희생을 하며 미군을 막아 줬는데, 어떻게 이를 무시할 수 있느냐"고 했다. 도대체 이 누리꾼들은 한국전쟁 당시 배경이나 한반도의 분단 상황을 알기나 하는 걸까.

중국 인민일보의 자매지인 관영 매체 '환구시보'는 이런 논란에 기름을 끼얹었다.

환구시보는 12일 "BTS의 정치적 발언에 중국 네티즌들이 분노하고 있다. 한국전쟁 당시 미군이 침략자였음에도 미국의 입장에만 맞춰 발언했다"고 보도하며 논란을 선동했다.

후시진 환구시보 총편집인은 15일 "한국 주류 언론은 중국 네티즌들의 반응을 선정적으로 보도해 긴장을 고조시켰다"고 적반하장 격인 논평을 내놓았다.

그렇다면 중국이 북한 당국이나 주민들에게나 함 직한 항변을 BTS를 향해 쏟아낸 이유는 뭘까?

중국은 BTS의 수상 소감 한마디를 꼬투리 삼아 세계적 이목을 집중시키는 데 일단 성공했다. 그 대상이 미국 빌보드 HOT 100 차트 1위와 2위에 동시에 이름을 올린 글로벌 아이돌이기 때문이다.

이는 중국이 자국 젊은 층의 배타적 민족주의를 십분 활용하려는 속셈으로 읽힌다. 겉으로는 민족주의지만 편협한 국수주의에 다름 아니다. 세계 2위의 강국이 국민의 민족주의적 감정을 부추겨 내부 결속을 강화하고 미국을 견제하는 동시에 동맹국들을 압박하려는 의도인 셈이다.

중국의 국제 무대 급부상을 경계하고 있는 미국 역시 즉각 반응하고 나섰다.

미 국무부는 BTS 수상 소감 논란 직후 대변인을 통해 "긍정적인 한미 관계를 지지하는 데 노력해 줘서 감사하다"는 내용을 BTS 공식 트위터에 게재했다. 미국 언론들도 "중국이 극단적 민족주의적 움직임을 보였다"고 일제히 비판적인 보도를 냈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중국에 대한 강한 압박을 통해 지지자들을 결집시켜 재선에 유리한 국면을 조성하겠다는 의도가 엿보인다.

이 틈바구니에서 가장 큰 희생자는 우리 기업이다.

논란이 확산되면서 BTS를 광고 모델로 내세운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휠라 등이 중국에서 운영하는 온라인 쇼핑몰과 소셜미디어에서 관련 게시물을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내릴 수밖에 없었다.

미·일·중·러의 틈바구니에서 살아남기 위한 위태로운 줄타기를 하는 우리가 어떤 주변국도 영원한 동지도, 영원한 적도 될 수 없음을 새삼 되새길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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