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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춘추] 선물

김성민 시인· 도서출판 브로콜리숲 대표

김성민 시인·도서출판 브로콜리숲 대표
김성민 시인·도서출판 브로콜리숲 대표

나는 산타가 있다고 믿었다. 동네 아이들 모두 산타가 거짓이라는 정보를 당연시하며 공유할 때도 나는 겉으로 그 말에 동조하는 척했지만, 속으로는 산타를 굳게 믿고 있었다.

어릴 때 부모님의 종교적 영향으로 독실한 신앙심을 가졌다거나 한 건 아니다. 교회는 여름성경학교 잠깐 다녀본 게 전부였으니까.

내 믿음의 근원은 오로지 잠결에 일어나 집안 한구석에서 어딘가로 서서히 사라지고 있던 붉은 옷을 입은 산타의 현존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한참 지나 나 또한 산타에 대한 믿음이 흔들리고 있을 때 가족 중 누군가가 이런 말을 남겼다.

'그건 그때 엄마가 빨간 내복을 입고 연탄불을 가는 모습이었다'고. 하지만 나는 실망하기는커녕 다시 한 번 산타에 대해 옅어져 가던 믿음을 굳건하게 내면의 것으로 만들고야 말았다. 지금도 산타를 믿느냐고? 하하하

매년 성탄절이 다가오면 '34번가의 기적'이라는 영화가 생각난다. 맨 처음 상영된 때가 1947년이었고 그 뒤로 몇 번 다시 만들어졌을 만큼 우리의 가슴을 따뜻하게 만들어 주는 영화이다.

이 영화에 나오는 수전이라는 아이는 산타를 믿지 않을 만큼 영악하다. 하지만 수전이 자신을 산타라고 말하는 크리스라는 노인을 만나면서 기적과 같은 일이 일어난다. 수전은 크리스에게 산타인 걸 증명해 보라며 갖고 싶은 선물의 그림을 보여주는데, 그건 가족이 다 함께 모여 살 수 있는 마당 넓은 집이었다. 영화 속에서 실제로 산타가 어떤 조화를 부렸는지는 모르지만, 수전과 엄마는 그 집을 얻고 점점 산타의 존재를 믿게 된다.

소개할 또 다른 영화는 천만 관객 돌파의 위업(?)을 달성했던 〈7번 방의 선물〉이다. 지능은 낮지만 따뜻한 마음씨를 가진 용구는 억울한 일에 휘말려 누명을 쓰고 교도소에 수감된다. 이래저래 용구로부터 도움을 받고 진심에 감복한 7번 방의 흉악범들이 용구의 소원대로 하나뿐인 딸 예승이를 몰래 데려와 용구와 지내게 해준다는 이야기다. 정말 영화 같은 이야기다. 이러한 이유로 우리는 영화에 푹 빠져드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선물은 이런 게 아닌가 싶다. 생각지도, 기대하지도 못했던 것을 받게 되는 순간. 어린시절 기억을 소환해 보면 조르고 조르다 겨우 얻어내는 장난감은 순간적으로 성취감을 느끼게 했을지는 모르지만 진정한 의미의 선물이 되어 주지는 못했던 것 같다. 또한 뭔가 거창한 것을 줄 것처럼 해놓고는 생색내듯이 찔끔 건네주는 걸 선물이라고 부르기도 어려울 것이다.

선물의 반대말이 있을까 싶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건 바로 '봉변'이 아닌가 싶다. 흥부가 놀부를 찾아갔다가 밥주걱으로 뺨을 맞는 그런 일들 말이다. 선물을 받는 것도, 하는 것도 쉽지 않다. 기껏 선물하고 욕먹는 경우도 있고, 상대방에게 불쾌감을 주는 경우도 있다. 가끔은 선물로 인해 곤경에 빠지는 경우도 있다. 선물을 줄 때는 세심한 배려가 있어야 한다. 선물은 그야말로 감동적이어야 한다. 이래저래 산타가 신경 쓸 일이 많은 연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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