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임언미의 찬란한 예술의 기억] 예술과 일상의 행복한 만남

임언미 대구문화 편집장
임언미 대구문화 편집장

프랑스 파리를 여행하는 사람들은 필수 코스로 루브르 박물관을 찾는다. 바삐 발걸음을 옮겨 인증샷을 촬영하는 곳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걸작 '모나리자' 앞이다. 먼저 다빈치의 원화를 실제로 봤다는 사실에 감동하고 교과서에서 배운 대로 눈썹이 없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여기서 조금 더 관심을 가지는 사람은 '모나리자는 누구일까'를 생각해본다. 미술사 연구자들은 이 작품의 모델이 다빈치의 이웃이자 피렌체의 상인 조콘도의 부인 '리자'라고 기록하고 있다. 전 세계 관광객들의 발걸음을 모으는 이 작품의 주인공은 다빈치의 '평범한' 이웃 여성이었다.

조선시대 화가들 중 김홍도와 신윤복의 그림이 높은 평가를 받는 이유도 그들이 일상 속 평범한 사람들의 모습을 화폭에 담아냈기 때문이다. 예술가들이 살았던 환경을 표현한 미술작품들을 보면 자연과 삶 그리고 예술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진 것을 발견하게 된다. 누구나 경험할 수 있는 일상이 예술가의 손을 거쳐 고도의 미적 경험 안에서 태어난 것이다.

유명 예술작품의 예를 들었지만, 우리 가까이에 있는 예술가들도 이렇듯 일상 속에서 소재를 찾는 경우가 많다. 많은 미술작품들이 그러하고 공연예술 작품도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을 무대로 옮긴 경우가 많다. 올해로 창단 40주년을 맞는 대구시립무용단은 국내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국공립 현대무용단이다. 1981년 대구시립무용단 창단 직후 선보인 작품 사진과 영상들을 보면 40년이 흐른 지금 봐도 '현대적'이다.

무용가들이 무대 위에서 당시 '신문물'이었던 투명 비닐을 휘감고 움직이고, PVC 파이프를 활용한 무대 소품을 배경으로 춤추는 장면이 눈에 띈다. 야외 공원에 설치된 대형 풍선과 조형물 앞에서 무용수들이 동작을 하고 있는 영상도 이색적이다. 해질 무렵 야외 공연에 필요한 조명은 오토바이 수십 대를 일렬로 세워 라이트 불빛으로 연출하기도 했다. 조명 조작은 무용수들의 가족이나 지인이 맡았다. 안무가의 큐 사인에 따라 오토바이 조명을 켰다 끄기를 반복하는 모습은 상상만 해도 즐겁다. 요즘의 공연 현실에서도 생각하기 힘든 다양한 실험들이었다.

부족한 남성 무용수는 대학에서 연기나 음악을 전공하는 남학생들을 불러 무대 위에 세웠다. 그저 서 있는 동작도 춤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김기전 초대안무가는 "예술작품의 소재를 친근한 일상 속에서 찾아야한다는 생각은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없다"고 말했다. 여러 예술 장르 가운데 무용, 특히 현대무용은 일반 사람들이 어렵다고만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은데, 이렇듯 일상 속 소재를 작품 속에 녹여내는 것은 관객들과의 거리를 한층 좁히는 계기가 됐다.

시립무용단과 함께 1981년 창단된 대구시립합창단의 전신은 아마추어 합창 단체였다. 장영목 초대지휘자는 1958년 아마추어 합창단원들을 모아 전원아카데미합창단을 창단했다. 순수하게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 단원이 되었고 또 후원자도 되었다. 음악을 좋아하는 마음 하나로 모인 만큼 단원들 간의 의리와 우정도 돈독했다.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이 많으니 관객을 모으는 일 또한 어렵지 않았다. 합창단의 연주가 열릴 때에는 객석이 언제나 가득 찼다.

시립합창단 창단 초기 공연에는 정규 단원이 부족해서 전원아카데미합창단 단원이 함께 무대에 올랐다. 지금은 성악을 전공한 연주자들로 구성된 전문 예술단체로 자리 잡았지만, 시립합창단의 출발은 음악을 좋아하는 일반 사람들의 모임이었다. 우리 지역을 대표하는 전문예술단체도 이렇듯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예술을 좋아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과 함께 시작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최근 생활예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미국의 철학자이자 교육학자 존 듀이의 저서 『경험으로서의 예술』이 많이 인용되고 있다. 듀이에 따르면 일상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경험들이 재구성되고 통합되어 '하나의 경험'으로 승화될 때 그 모든 것은 예술이 될 수 있다. 예술작품은 '예술가의 생산물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예술적 경험이 작용하는 삶'을 의미한다.

올해도 창단 40주년을 맞은 시립무용단과 합창단뿐만 아니라 지역의 예술기관·단체들이 사람들의 일상으로 다가가는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준비하고 있다.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일상과 예술이 그리 멀리 떨어져있지 않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2021년에도 많은 사람들이 생활 속에서 다양한 '예술적 경험'을 누릴 수 있기를 기대한다.

임언미 대구문화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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