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찬미(讚美) 문재인

조두진 논설위원
조두진 논설위원

'사미인곡'(思美人曲)은 조선 선조 때 정치가 송강 정철(鄭澈)이 1587~1588년 쓴 가사(歌辭) 작품이다. '이 몸이 태어날 때 님을 따라 태어나니, 한평생 함께할 인연이며~,(로 시작해) 님께서야 나인 줄 모르셔도 나는 님을 따르리라'로 맺는다. 이별한 남편을 그리워하는 여인의 마음을 담은 작품이지만, 실은 고신연주(孤臣戀主)의 정(情), 즉 임금의 사랑을 잃었으나 자신의 충정은 변함없음을 호소한 것이다. 당시 정철은 관직에서 물러나 고향인 전라도 창평(昌平)에 살고 있었다.

군주국 조선에서 신하는 임금의 마음에 들어야 관직을 얻을 수 있었다. 정철은 '사미인곡'을 씀으로써 다시 임금의 마음을 얻고 싶어 했다. 정철뿐만 아니라 조선의 신하들에게는 자신의 철학과 능력, 비전보다 임금의 총애가 훨씬 중요했다.

정철이 '사미인곡'을 쓰고 433년이 지났다. 국가 체제는 군주제에서 민주공화제로 바뀌었고 사회풍토, 산업구조 등 거의 모든 영역이 진보했다. 하지만 정치 영역은 거꾸로 간다. 군주국에서나 있을 일들이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버젓이 벌어진다.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출마한 박영선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은 지난 24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대한민국은 문재인 보유국이다!"는 찬사의 글을 썼다.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우리는, 지금껏 한 번도 만나본 적 없던 대한민국과 대통령을 맞이할 수 있게 됐다.… 1월 24일 오늘은, 대통령님의 69번째 생신이다"고 썼다. '대깨문'들은 "명월(明月)이 천산만락(千山萬落)에 아니 비친 데가 없다"는 문 대통령 생일 축하 광고를 냈다. 그들에게는 천산만락에서 터져 나오는 '곡소리'가 가야금 선율로 들리는 모양이다. 하긴 온갖 폭정과 실정이 밝고 부드러운 달빛으로 둔갑하는데, 곡소리가 가야금 선율이 못 될 까닭도 없다. '명월 천산만락…' 어쩌고 하는 저 낯뜨거운 칭송은 정철이 또 다른 가사 작품 '관동별곡'(關東別曲)에서 선조 임금에게 바친 아부였다.

민주당 후보들에게는 개인 능력, 대중성은 둘째 문제다. 대통령에 대한 사모의 정이 약하면 당내 경선 탈락이다. 본선엔 나가지도 못한다. 조선에서 임금이 절대적이듯, 북한에서 김정은이 원톱이듯, 누가 문 대통령을 더 잘 보필하느냐가 '간택'의 기준이다. 퇴행도 이런 퇴행이 없다.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