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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일의 이른 아침에] 황당한 2·4 부동산 대책

노동일 경희대 교수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이 지난 4일 오전 정부서울청사 별관 강당에서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이 지난 4일 오전 정부서울청사 별관 강당에서 '공공주도 3080+ 대도시권 주택공급 획기적 확대 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노동일 경희대 교수
노동일 경희대 교수

"여러분 집 앞에 길이 있지요? 지금은 없지만 이 길 어딘가에 앞으로 횡단보도와 신호등을 만들 예정입니다. 길을 건너는 분들은 언제인지 몰라도 장차 생길 신호등과 횡단보도를 감안해서 거기에 맞게 보행해야 합니다. 무단횡단을 하는 분들은 CCTV로 녹화해 놓았다가 나중에 과거의 보행 기록을 사후 적용해서 과태료를 물릴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런 고지를 접했다면 어떻게 반응할까. 황당해하거나 아니면 그런 법이 어디 있느냐고 항의할 게 분명하다. 누구에게 물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런데 이게 대한민국 정부가 발표한 정책의 내용이라면 이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2·4 부동산 대책은 바로 그 같은 황당한 얘기를 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신년 기자회견에서 설 전에 나올 부동산 대책을 예고했다. 신년사에서 "주거 문제의 어려움으로 낙심이 큰 국민들께 매우 송구한 마음"이라고 한 문 대통령이 "부동산 안정화에 성공하지 못했다"며 주택 공급 정책을 밝힌 것이다. "부동산 문제는 자신 있다"는 자세에서 인식의 전환을 보인 건 긍정적 신호라 할 수 있다. 그동안 언급했던 '특단의 대책'을 넘어 "국민 불안을 일거에 해소하자는 것에 목적을 두고 있다"면서 "저도 기대가 된다"는 문 대통령의 말이 기대를 더 크게 했다.

2·4 부동산 대책은 이런 기대 속에 탄생한 획기적 작품이다. 부동산 전문가가 아니어서 주택 공급 정책의 실효성을 평가할 처지는 아니다. 이 글을 쓰는 이유는 2·4 대책이 현 정부 정책의 여러 문제점을 집약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여권은 변창흠 국토부 장관의 여러 구설과 의혹에도 '주택 공급 전문가'라는 명분으로 임명을 강행했다. "청문회에서 시달린 사람이 일을 잘한다"고 했던 문 대통령이 "청문회에서 얻은 교훈을 제대로 실천하는 길은 임무를 성공적으로 완수해 내는 것"이라고 당부했을 정도다.

이처럼 무리한 장관 임명이 문제 있는 정책의 근원이라는 생각이다. 장관이 국민 대신 대통령 혹은 여권의 눈치만 살피느라 무리수를 두기 십상이다. 국정을 블랙홀에 빠뜨린 추미애-윤석열 갈등 등에서 익히 목도한 바 있다. 이번에도 선거를 앞두고 대통령의 기대에 부응하려는 강박관념이 황당한 부동산 정책으로 귀결된 것이다.

솔직히 처음엔 어리둥절했다. 구체적 장소도 없이 공공 주도로 전국에 총 80만 가구, 서울에 32만 가구의 주택을 공급한다는 낯선 대책이었기 때문이다. 발표일 이후 '사업구역 내'에서 부동산을 매입할 경우 우선 공급권을 주지 않고 현금 청산한다는 내용은 더 이상했다. 어떤 지역에 어떤 사업을 할지 정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그곳에' 집을 사면 불이익을 받을 것이라는 말이다.

이해가 쉽지 않았지만 앞서 소개한 횡단보도 비유를 들어 설명한 지인의 글을 보고 문제점을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당연히 위헌 논란이 불거져도 정부는 문제가 없다는 강변으로 버틴다. 현 정부 정책의 또 다른 문제점인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한다는 인식이 드러난 사례가 아닐 수 없다. 부동산 투기 방지라는 고상한 목적을 위해서라면 헌법과 법률은 장식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대통령 공약인 월성 원전 폐쇄라는 목적 달성을 위해 경제성 조작이라는 수단을 동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무엇이든 정부가 하겠다는 과욕 역시 중요한 문제점이다. 빵이든 집이든 만드는 것은 시장의 수요와 공급에 따라 민간이 해야 할 일이다. 심판인 정부가 선수로 뛰는 순간 낭비와 비효율이 증가한다는 것은 역사적 사실이다.

정부는 공정한 규칙을 만들고 민간인 선수들의 반칙을 시정하는 본연의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 민간이 하지 못하거나 할 수 없는 일에만 정부가 나서야 한다. 허탈하지만 이런 종류의 고언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점도 공통적이다. 언론을 통한 비판과 지적은 정부 정책의 문제점을 발견하고 시정하기 위한 중요한 통로이다. 현 정부는 다른 의견을 개혁 저항 세력의 틀린 의견으로 적대시해 왔다. 남은 1년여 기간도 지금까지 견지해 왔던 자세가 변하지는 않을 것이다. 예측이 틀렸으면 하는 한 가닥 기대는 있다. 2·4 대책을 시작으로 정부가 비판에 귀를 기울여 정책을 보완하는 기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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