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보육시설 차량 표지판 의무화…상처받은 아이들 또 울리나?

배려없는 개정 도로교통법 논란…사춘기 중·고생 특히 걱정
주변 시선 의식 탑승 거부…'보호 아동' 낙인 반발 우려

자료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자료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대구 한 보육원 원장 A(60) 씨는 최근 개정된 도로교통법으로 걱정이 늘었다. 5월부터 차량에 어린이보호표지판 등을 붙여야 하는데, 보육원 아이들이 차량에 표시가 있으면 탑승을 꺼리기 때문이다.

A씨는 "지자체나 복지기관에서 지원받은 차량도 겉면에 복지시설 지원 차량 스티커가 붙어있어 아이들이 타기를 꺼린다. 보육원에 다닌다는 자체가 아이들에게 큰 상처인데, 대놓고 어린이보호 차량 표기로 더 상처받을까봐 걱정"이라고 했다.

지난해 11월 개정된 도로교통법에 따르면 어린이 통학버스 신고의무대상이 기존 유치원, 초등학교, 어린이집 등 6곳에서 아동복지시설, 청소년 수련시설, 장애인 복지시설 등 18곳으로 확대됐다. 오는 5월부터 통학차량은 어린이보호표지판을 자동차 앞뒤에 부착하고 차량 색상을 다르게 해야 한다.

문제는 이로 인해 아이들이 마음에 상처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대부분 아동들이 현재도 시설 차량 이용을 꺼리는 상황에서 어린이보호 차량의 표시까지 더해지면 시설 아동이라는 낙인에 아이들의 반발심이 커질 수 있어서다.

현재 아동복지시설 차량은 시설에서 자체적으로 구입하거나 대구사회복지공동모금회, 은행 등에서 지원받는다. 다만 지원받은 차량마저도 '후원 차량'이라는 표시로 인한 아이들의 탑승 거부가 심해 아무런 표시가 없는 자체 승용차로 이동하는 경우가 잦다.

대구 동구 한 아동복지시설 관계자는 "초등학생 고학년, 중·고등학생 아이들은 시설 차량 이용을 극도로 꺼린다. 남이 보는 것을 의식해 시설 차량에서 내린 뒤 골목으로 들어가 숨는 등 표시가 된 차량을 잘 타지 않으려고 한다"고 했다.

특히 한창 예민한 중학생 이상의 사춘기 아이들이 마음에 상처를 입을까봐 우려스럽다. 시설 차량을 타는 것은 13세 미만 어린이보다 중·고등학생이 더 많다.

한국아동복지협회 관계자는 "시설 아동들은 어떤 형태든 차량 표기 자체를 예민하게 받아들인다. 아이들에겐 아동복지시설이 곧 집이고 시설 차량이 자가용인 셈인데 차량 표시는 이중으로 트라우마를 주는 셈"이라며 "아동들의 입장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배려 없는 정책이다. 의무 신고대상자에서 아동복지시설 차량을 제외시켜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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