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계의 창] 실질임금 높이고, 노동환경 개선 위한 최선의 방법

로봇
mWiz 이 기사 포인트

권혁욱 니혼대학 경제학부 교수

권혁욱 니혼대학 경제학부 교수
권혁욱 니혼대학 경제학부 교수

표준적인 경제학 교과서는 실질임금과 노동생산성(노동시간당 부가가치액) 사이에는 비례관계가 있다고 가르친다. 1995년 이전에는 노동생산성 상승이 실질임금에 잘 반영되어, 노동생산성과 실질임금 사이의 비례관계가 분명하게 관찰되었다. 그런데 1995년 이후에 많은 나라에서 노동생산성은 상승하는데 실질임금이 오르지 않는 이상한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실질임금이 노동생산성의 상승을 반영하지 못하는 문제는 노동분배율(새롭게 창출된 부가가치 중에서 노동자에게 배분되는 몫)의 저하와 교역조건(수출하는 재화'서비스와 수입하는 재화'서비스의 상대가격)의 악화로 설명할 수 있다.

저명한 경제학자인 칼도어가 경제성장에 관한 정형화된 사실 중 하나로 노동분배율이 일정하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런데 2000년 이후에 많은 선진국에서 노동분배율의 저하가 관찰되면서 그 원인에 관한 연구가 많이 이루어졌다. 이러한 연구들이 밝힌 노동분배율 저하 원인은 다음의 다섯 가지이다. ①값싼 수입품과 생산활동의 해외 아웃소싱 영향 ②인공지능, 로봇 등과 같은 자본이 노동을 대체한 영향 ③노동절약적인 거대 IT 기업이 급속히 규모를 확대해 시장집중도 상승 영향 ④주식 배당을 중시하는 외국인 투자가와 기관투자가의 비중 증가 영향 ⑤비정규 노동자 증가로 인한 영향이다. 이와 같은 노동분배율 저하 현상과 연구 결과가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 정책에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필자가 히토쯔바시대학의 후카오 교수, 서강대 경제학부의 박정수전현배 교수와 공동으로 행한 연구에서는 한국과 일본에서 보이는 실질임금과 노동생산성 사이의 괴리가 노동분배율 저하보다는 교역조건의 악화에 있음을 밝혔다. 가격하락이 크지 않은 석유, 농산물 등과 같은 1차 산품을 주로 수입하고 기술 진보가 빠른 전자제품, 자동차, 기계 등을 수출하는 한국과 일본 같은 나라에서는 빠른 기술 진보에 따른 수출품의 상대가격 하락이 교역조건을 어느 정도 악화시키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다.

그런데 노동생산성 상승분만큼 실질임금이 오르지 못하는 부분의 차이를 100%로 할 경우 한국은 80%, 일본은 70%로 설명할 정도로 교역조건이 악화되었다. 이는 한일 양국의 기업이 해외직접투자로 생산의 해외 이전을 통해 국내에서 생산하는 제품과 같은 품질의 제품을 해외에서 대량으로 생산하기 때문에 일어난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국내 기업의 생산활동의 해외 이전은 앞에서 노동분배율 저하의 주요한 원인의 하나로 들었듯이 노동분배율의 저하에도 기여할 뿐만 아니라 교역조건을 악화시키기 때문에 노동자의 실질임금을 크게 하락시킨다.

노동자의 임금을 올리고, 열악한 노동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최저임금을 인상하고, 산업재해에 대한 책임을 경영자에 묻는 중대재해 처벌법을 제정하는 등 기업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면 상대적으로 높은 임금을 줄 수 있고 노동환경도 괜찮은 기업들은 기업활동에 대한 우대가 큰 나라에 생산 거점을 이전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에 교역조건은 오히려 악화되고, 국내에는 열악한 노동환경으로 생산활동을 계속하는 한계기업만 존재하는 역설적인 상황이 생길 것이다. 한국과 일본처럼 가격이 빠르게 하락하는 정보통신 제품을 많이 생산, 수출하는 나라가 실질임금과 노동환경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기업활동을 규제하기보다는 생산 거점으로서의 매력을 높여 국내 대기업들이 해외로 빠져나가게 하지 않고, 해외의 대기업이 들어오도록 해야 한다.

이러한 상황임에도 한국은 법인세 인상, 노동시간 규제, 최저임금 인상, 에너지 가격 인상, 산업재해에 대한 경영자 책임 강화 등으로 생산 거점으로서의 한국의 매력을 떨어뜨리는 제도와 정책의 변화를 계속하고 있다. 노동자들의 몫을 높여주기 위한 정책과 제도들이 오히려 노동자의 몫을 낮추게 되는 역설적인 상황이 만들어지게 될 것이다. 자본과 노동의 이동이 자유롭지 못했던 시대에는 한 나라 안에서 자본과 노동을 대립적인 관계로 보았지만, 더 높은 이익과 임금을 좇아 자본과 노동이 국경을 넘어 자유롭게 이동하는 현재에는 자본과 노동을 대립적인 관계로 보면 곤란하다. 국내에서 기업들이 자유롭게 고용, 생산, 판매하도록 하고, 기업 간에 공정하게 경쟁하는 환경을 조성하면 노동자의 임금과 노동환경은 크게 개선되고, 경제도 지속적으로 성장해 갈 것이다.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