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오는 소리가 들린다. 얼른 봄이 와 겨우내 얼어붙었던 우리네 마음에도 꽃이 피었으면 좋겠다. 우리네 봄은 입춘과 함께 시작해 대동강도 풀린다는 우수 경첩을 거쳐 절정에 이른다. 그런데 서양의 봄은 사순절과 함께 시작된다. 그래서 제프리 초서(Geoffrey Chaucer)는 『캔터베리 이야기』에서 사순절을 이렇게 알렸다. "여기저기 숲과 들판의 새순에 입김 불어넣고, 젊은 태양은 (봄을 알리는) 백양 자리를 지나가고, 밤새 뜬 눈으로 잠들었던 새들도 일어나 저마다 노래를 하네."
사순절은 기독교 최대의 절기다. 사순절은 예수님이 부활하신 부활절 전날까지 일요일을 뺀 사십일 동안 진행된다. 올해 사순절 시작은 지난 2월 17일이었다. 지금은 사순절의 중심에 있다. 성탄절이 그렇듯이 사순절은 개신교, 가톨릭, 정교회를 포함해 모든 기독교회가 함께 지키는 절기다. 심지어 개신교 가운데 가장 급진적인 재세례파도 함께 한다. 그만큼 사순절은 기독교인들에게 중요하고, 큰 의미를 지니는 절기다.
사순절을 뜻하는 영어는 렌트(Lent)다. 렌트는 고대 영어 lencten에서 왔는데, 그 뜻이 봄철(spring season)이란 의미다. 이 단어가 고대 독일어 langiton과 연결되는데 영어로 long이란 뜻이다. 렌트는 '봄이 되어 낮의 길이가 길어지다'는 의미가 있다. 사순절은 어원적으로 '봄'이라는 좋은 날을 기다리는 의미 또한 담고 있다. 그래서 기독교의 사순절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준비하는 기다림의 시간이다. 기독교인들은 사순절을 기도와 회개, 단순한 생활과 금식, 이웃 구제와 봉사의 생활을 하면서 기다린다. 오랜 시간 많은 기독교인들에게 사순절은 금식과 절제, 단순한 삶을 추구하는 날이었다.
이때가 되면 성당이든 교회든, 강단에서 들려오는 많은 당부의 말씀이 있다. 사순절 이 기간만이라도 '절제하고, 단순하게 생활하고, 가난한 이웃을 돌보라'는 말이다. 오래전 유럽에서 생활하며 경험한 사순절이 아직도 생생하다. 영국의 부모들은 사순절이 시작되면 그 기간 동안에 아이들에게 초콜릿을 먹지 말라고 당부한다. 그 당시 나는 왜 하필 초콜릿인가 했다. 요즘은 한국도 마찬가지지만 그 당시 영국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것이 초콜릿이었다. 아이들은 유치가 다 녹아내리는 줄도 모르고 초콜릿을 먹을 정도였다. 이런 어린아이들에게 영국 부모들은 사순절 이 시간만이라도 초콜릿을 절제하라고 했던 것이다.
그렇게 보면 요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사순절이 아닌가 한다. 미디어와 정부에서 쏟아내는 소리의 중심은 '소비'에 있는 것 같다. 물론 수요 없는 공급이 없듯이 소비 없는 생산이 있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는 '소비지상주의'를 향해 달리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에게는 단 한 번이라는 짧은 생이 주어져 있다. 그마저도 순식간에, 어쩌면 덧없이 지나갈 수 있다. 그 짧은 생이 우리의 욕망을 채우는데 쓰라고 주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동양의 고전 『대학』에 "멈춤을 안 이후에 정함이 있다(知止以後有定)"고 했다. 오늘 우리의 큰 문제는 마음의 소욕을 멈추지 못하는데 있다. 욕망을 멈추지 않으면 마음이 불편하고, 결국에 불행해진다. 마음의 부담과 압박도 채워지지 않는 그 욕망에서 비롯되지 않는가. 행복은 끝없는 욕망을 채우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절제된 습관과 소박한 생활에 달려 있다.
영남신학대학교 기독교 영성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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