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조선구마사’ 논란

김해용 논설실장
김해용 논설실장

링컨이 흡혈귀 사냥꾼이었다고? 2019년 미국 영화 '링컨: 뱀파이어 헌터'(이하 '링컨')의 스토리다. 할리우드 거장 팀 버튼이 제작했으니 '듣보잡급' 영화도 아닌데 설정이 참 황당하다. 어머니가 괴한에 목숨을 잃는 비극을 겪은 링컨이 복수에 나섰는데 원수가 뱀파이어라는 것이다. 링컨은 혹독한 수련 끝에 뱀파이어 헌터로 거듭나고 뱀파이어 조직과 전쟁을 벌인다는 내용이다.

'링컨'을 연상시키는 한국 드라마가 있다. SBS 드라마 '조선구마사'다. 이 드라마에서 태종과 세종은 조선을 위협하여 멸망시키려는 사악한 악령으로부터 백성을 지키려고 맞선다. 그런데 방송 첫회가 나가자마자 난리가 났다. 방송 중지 국민 청원마저 올라가는 등 파장이 커지자 드라마 광고주들이 줄줄이 떨어져 나가고 문경시도 제작 지원을 철회했다.

'링컨'이 이와 유사한 시비에 휘말렸다는 기억은 없다. 그런데 '조선구마사'가 논란을 빚는 연유는 무엇일까. 일각의 주장처럼 우리 국민들이 드라마를 드라마로 못 받아들이는 별난 기질을 지녀서인가. '링컨'과 '조선구마사' 사이에는 결정적 차이점이 있다. 뱀파이어 헌터로서도 링컨은 여전히 멋있다. 영화는 미국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대통령을 히어로로 그려내고 있다.

반면 '조선구마사'에서 세종은 이미지가 제대로 깎였다. 언행이 가볍고 효심 빈약한 인물로 묘사된다. 시청자들은 조선왕조의 시작을 모욕하려는 연출 의도가 드라마에 엿보인다며 분통을 터뜨린다. 충무공과 국민 존경 1·2위를 다투는 세종의 '까방권'(까임 방지권)을 드라마가 훼손하니 국민 자존심에 상처가 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이 드라마 작가의 전작에서도 한국 역사에 대한 혐오와 비하, 중국의 동북공정 옹호가 있었다는 주장이 잇따라 제기되면서 후폭풍이 더 커지고 있다.

SBS는 '조선구마사' 내용을 대폭 수정해 방송을 이어 나갈 뜻을 피력했다. 하지만 사태가 너무 커졌다. 퓨전 시대극이라고 해도 왜곡할 내용이 있고, 넘어서 안 될 선이 있다. 영화 '나랏말싸미'처럼 신미 스님이 한글을 창제했다고 주장하면서 세종의 업적을 깎아내려서는 안 된다. 거북선이 최첨단 잠수함으로 변신해 왜군을 신나게 격파하더라도 충무공이 멋지게 나온다면 국민들로서 화낼 이유가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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