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전형성 탈피한 윤여정의 연기 여정과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할머니 같지 않은 할머니 '순자' 역…'K할머니' 우리 시대 어르신상 그려
55년간 90여 편 영화·드라마 출연

한국 배우 최초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받은 배우 윤여정이 25일(현지시간) 오스카상 시상식이 끝난 뒤 주로스앤젤레스(LA) 총영사관에서 특파원단과 기자 간담회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 배우 최초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받은 배우 윤여정이 25일(현지시간) 오스카상 시상식이 끝난 뒤 주로스앤젤레스(LA) 총영사관에서 특파원단과 기자 간담회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배우 윤여정의 연기 여정을 한 단어로 정의하면 '다양성'이다. 전형적인 배역을 탈피해 다양한 스펙트럼의 연기를 해온 배우였기에 거둘 수 있었던 쾌거라는 해석이 나온다.

영화 '미나리'에서 할머니 순자 역할로 오스카를 품은 배우 윤여정은 데뷔 이후 55년 동안 90편이 넘는 영화와 드라마에 출연했다.

우선 제93회 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 오스카 트로피를 품에 안은 윤여정이 영화 '미나리'에서 맡은 역할은 순자라는 이름의 할머니였다. 병아리 감별을 하던 딸 부부가 인생 역전을 위해 미국 아칸소주 시골로 이주하면서 생긴 육아의 빈틈을 메우러 온 것이었다. 전쟁통에 남편을 잃고 한국에서 혼자 살아오다 딸과 사위의 손을 덜기 위해 미국으로 온 할머니. 여기까지는 전형적인 한국 할머니였다.

배우 윤여정이 25일(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LA)의 유니언 스테이션에서 열린 제93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한국 배우로는 최초로 여우조연상을 받았다. 윤여정은 수상작인 영화
배우 윤여정이 25일(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LA)의 유니언 스테이션에서 열린 제93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한국 배우로는 최초로 여우조연상을 받았다. 윤여정은 수상작인 영화 '미나리'에서 순자 역을 맡았다. 사진은 영화 '여배우들'에 나온 윤여정. 연합뉴스

그러나 "할머니는 할머니 같지 않다"는 손자 데이빗의 대사처럼 미국 사회의 눈에 특이한 캐릭터였다. 미국 할머니들처럼 쿠키를 구워 주기는커녕 '산이슬물'(청량음료를 지칭)을 가져오라 해서 아이들과 같이 마시고, 다른 놈을 이겨 먹으려면 필요하다며 고스톱 조기교육에 나서는 한국 할머니다.

2016년 작 '죽여주는 여자'에서 박카스 할머니를 맡아 열연하던 그의 모습을 되짚는다면 전혀 다른 배우가 아닐까 싶을 정도다. 하지만 이는 배우 윤여정의 신념에 가까운 연기관을 떠올린다면 매우 자연스러운 행보다. 그는 실제 최근 인터뷰에서 "필생의 목적이 무엇을 하든 다르게 하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도 처음부터 다양한 배역을 시도할 수 있었던 건 아니었다. 좋아하는 사람과 하고 싶은 작품을 골라서 하는 '사치'를 누린 건 60세가 넘어서부터였다.

그의 첫 스크린 데뷔작은 1971년 작 영화 '화녀'였다. 그가 아카데미상 여우조연상 수상 소감에서도 언급했던 고(故) 김기영 감독과 호흡을 맞춘 이 영화에서 그의 역할은 주인집 남자를 유혹하는 가정부였다. 당시 20대 여배우들과는 다른 행보였다.

드라마 '장희빈'(1971∼1972년)에서도 악녀 연기로 주목받았다. 당대에는 억눌러야 미덕으로 칭송받던 욕망 발산이었다. 그는 욕망을 적극적으로 발산하는 캐릭터를 연기했다. 공백기 이후 돌아온 그가 맡은 역할도 범상치 않았다. 임상수 감독의 '바람난 가족'(2003년 작)에서 간암 투병 중인 남편을 두고 공개적으로 불륜을 선언하는가 하면 '돈의 맛'(2012년 작)에서는 남편의 불륜을 비웃듯 재벌가 안주인으로서 나이와 무관한 욕정을 분출하며 열연했다.

정덕현 대중문화 평론가는 "배우 윤여정은 더 넓은 스펙트럼의 다양한 연기를 해왔던 게 사실이다. 늘 틀에 박힌 전형성을 거부하는 역할을 연기했던 배우였다"며 "'K할머니'라 불리는 영화 '미나리'의 순자가 전형성을 벗어난 우리 시대의 어르신상을 그려낼 수 있었던 것 역시 배우 윤여정의 이런 특별한 연기 여정의 자연스러운 귀결이 아닐 수 없다"고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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