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해봐야 안다

이수영 책방
이수영 책방 '하고' 대표

굳이 안 해봐도 되는 일을, 남들이 말리는데도 불구하고 해봐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들이 있다. 어찌 보면 매우 비효율적인 유형인데 참으로 안타깝게도 내가 그렇다. 직장 생활이 성격에 잘 맞지 않는다는 걸 일찌감치 깨닫고 20대의 많은 날들을 무용한 일들만 골라 하며 지냈다. 목적지도 없이 세계 여행을 다니기도 했고, 친구들과 낄낄거리며 돈 안 되는 일들을 벌이기도 했다.

그러다 대구로 이사 온 후 어렴풋이 책방을 하고 싶다는 소망을 몸소 실천하기에 이르렀다. 구체적 계획이나 포부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일단 '해보면 되겠지'라는 단순한 생각으로 말이다. 그렇게 6년이란 시간이 흘렀고, 역시나 해보니 알겠다. 책방은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다는 걸.

가끔 책방을 준비 중인 분들이 찾아와 책방의 수익구조에 대해 물어보는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대부분의 동네책방들은 책 판매만으로는 운영이 힘들다. 물론 어딘가에 책 판매로 훌륭히 수익을 창출하는 책방이 있을지도 모른다. ㈜동네책방 통계에 따르면 2015년 97곳이었던 동네책방은 2017년 283곳, 2019년 551곳, 2020년 634곳으로 증가했다. 이런 통계만 본다면 전국적으로 동네책방들이 성업 중인 것 같지만 그 이면에는 생긴 수만큼 사라지는 많은 책방이 있다.

공간 임대료는 점점 오르고 책은 온라인 서점에서 할인된 가격에 구매하는 시대로 변한 지 오래다. 하물며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조차 동네책방에서 책을 보고난 후 온라인에서 구매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핫플레이스가 된 유명 책방들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은 듯하다. 손님들은 많이 오지만 대부분 인증사진만 찍고 나간다. 그렇기에 책방 운영을 위해서는 책 판매 이외에 책방만의 다양한 프로그램을 기획하거나 지자체의 문화 지원사업을 신청하기도 하지만 혼자 운영하는 곳들은 이 많은 일들을 감당하기 버겁다.

그래서 책방을 준비하는 분들께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독보적 프로그램이 있지 않은 이상 운영이 어렵다고 솔직히 이야기한다. 책을 좋아한다는 낭만적 이유만으로 뛰어들었다가는 차가운 현실에 부딪히게 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봐야 알게 되는 것들이 있다.

하고 싶은 일이 많았던 20대의 어느 날, 한 직장에서 20년 가까이 일한 선배에게 한 곳에서 오래 일할 수 있는 비결을 물었다. 그 선배는 그 일이 좋아서 그런 게 아니라 할 수 있는 선택이 이거밖에 남지 않아서 그렇다고 했다. 그때는 갸우뚱했던 그 말을 이제는 조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무턱대고 시작했던 많은 일들을 통해 내가 잘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구분하게 되었고 굳이 안 해도 되는 일은 덜하게 되었다. 이것저것 가지치기를 하고 나니 나에게도 많은 선택이 남아있진 않았다.

일본의 인기 그림책 작가인 요시타케 신스케는 '있으려나 서점'이라는 책에서 서점에 대해 이렇게 정의했다. "희망과 실망, 욕망, 타인의 인생과 본 적이 없는 풍경, 세계의 비밀과 또 하나의 자신 등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을 살 수 있는 곳"이라고.

책방을 하고나서 책을 팔아서 먹고 살기 힘들다는 것도 알았지만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을 파는 너무나 매력적인 일이란 것도 알게 되었다. 역시 해봐야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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