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중기의 필름통] 캐시트럭

영화
영화 '캐시트럭'의 한 장면

영국의 가이 리치 감독이 아드레날린 폭발하는 액션물로 찾아왔다.

아들을 잃은 아버지의 복수를 그린 영화 '캐시트럭'(Wrath of Man)이다. 그것도 액션영화로는 흔치 않게 '청소년관람불가'라는 화끈한 태그를 달고 말이다.

'분노의 사나이'라는 원제를 제쳐놓고 한국에서는 '현금 수송트럭'이란 뜻의 영어 제목을 달았다. 트럭의 저돌적인 느낌과 현금의 범죄적 느낌을 담으려는 의도였을까.

아들이 악당의 총에 숨진다. 아빠가 아들을 혼자 둔채 부리토를 사러 간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다. 아들은 차 안에서 아빠를 기다리던 중이었다. 그곳이 현금 수송트럭을 강탈하던 범행 현장 옆이었던 것이 문제였다. 아들이 총에 맞는 모습을 보고 달려오던 아빠도 그들이 쏜 총에 맞는다. 그러나 아빠는 구사일생으로 살아난다. 이제 복수의 시간이다. 먼저 복면을 한 그들의 정체를 알아야 한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어린 아들의 죽음에 분노하지 않을 아빠는 없다. 범인들이 몰랐던 것이 하나 있다. 그 아빠가 조직의 보스이면서 총칼과 주먹에, 냉혹함까지 갖춘 킬링 머신, 복수를 위해 완전군장을 갖춘 인물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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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캐시트럭'의 한 장면

'셜록 홈즈'(2009), '알라딘'(2019)의 가이 리치는 뮤직비디오 감독 출신답게 감각적인 연출로 새바람을 몰고 온 감독이었다. 1999년 '록 스탁 앤 투 스모킹 배럴즈'와 2001년 '스내치' 등 영국식 블랙 유머가 담긴 색다른 영화로 관객의 환호를 받았다. 연출과 함께 각본까지 쓰면서 그의 영화에서 빠지지 않는 특징이 있었으니 바로 요란한 대사(?)다. '젠틀맨'(2020)은 관객이 자막을 따라가기 어려울 정도로 수다스러웠다.

그러나 '캐시트럭'은 이런 것들을 모두 내려놓았다. 유머도, 말수도 줄이고 오로지 화끈한 복수극에 매진한다. 그 주인공이 수다와 거리가 먼 배우 제이슨 스타뎀이기 때문일 것이다. 가이 리치는 이 영화를 구상할 때부터 제이슨 스타뎀을 염두에 뒀고, 전화를 걸어 2분 만에 그를 캐스팅했다고 한다.

제이슨 스타뎀은 확실히 '젠틀맨'의 매튜 맥커너히와 '알라딘'의 윌 스미스, '셜록 홈즈'의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와 결이 다른 인물이다. 말없이 주먹이, 설명 없이 방아쇠를 먼저 당길 캐릭터이고, 영화에서 피도 눈물도 없이 냉혹하게 그 일을 수행한다.

재기발랄하던 스타일은 버렸지만 연출의 솜씨는 역시 가이 리치다운 맛을 보여준다. 특히 오프닝신이 인상적이다. 현금 수송트럭이 강탈당하는 순간을 보여주는데 현금자루를 옮기는 악당의 모습을 카메라가 차 안에서 비춘다. 그때 총 소리가 들려온다. 화면 좌측 상단, 전면 유리창 너머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바로 문제의 총격이다. 무심하게 비추는 듯하지만, 관객들의 호기심과 흥미를 유발시키기에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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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캐시트럭'의 한 장면

이야기의 진행 순서를 달리 배열하면서 단순한 플롯을 다채롭게 조절한 기교도 돋보인다. 영화의 전개는 현금 수송회사에 위장 취업한 H(제이슨 스타뎀)를 보여준 뒤에 그가 어떤 인물이고 무슨 이유로 현재에 이르렀는지를 보여준다. 그때까지 H는 수수께끼 같은 인물이다.

그는 몇 차례의 현금 강탈시도를 원샷 원킬의 화려한 총 솜씨로 격퇴시킨다. 이 같은 폭발력의 긴장감이 수그러들 때 원한에 사무친 H의 사연이 드러나면서 관객을 다시 극 속으로 몰입시킨다. 그래서 119분의 제법 긴 러닝타임이 지루할 틈 없이 흘러간다.

1억5천만 달러를 노리는 악당들의 블랙 프라이데이 습격 계획과 이들과 맞서는 H의 총격신은 귀를 때리는 음향효과와 함께 긴장감을 더한다. 찾아 헤매던 원수를 드디어 만났으니, 오죽할까. 원 없이 치고받고, 깔끔한 결말까지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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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캐시트럭'의 한 장면

제이슨 스타뎀은 그의 출세작인 '트랜스포터' 시리즈의 성격에 좀 더 중후한 느낌과 더 완숙된 존재감으로 H역을 '딱 맞아떨어지게' 소화한다. 사실 그는 말하지 않을 때 더 긴장감을 주는 배우이기도 하다. 꽉 다문 입이 자비 없는 복수를 예고한다. 액션의 리듬과 함께 음악도 분위기를 잘 고조시킨다.

'캐시트럭'은 스트레이트의 정공법을 구사하는 액션 영화다. 어퍼컷이나 라이트펀치 없이 쭉 직진한다. 가이 리치의 화려한 언변과 재치 있는 기교를 좋아하는 관객들에게는 다소 낯설어 보이기도 하지만, 그런 자신만의 장기를 걷어내고 우직하게 밀고 간 가이 리치의 포지셔닝이 오히려 더 적절하고 주효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캐시트럭'은 저돌적인 액션영화여야 하기 때문이다. 119분. 청소년 관람불가.

김중기 문화공간 필름통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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