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섬유·염색산업의 산 증인이자 대부(代父)로 불리는 이승주 전 국제염직(현 국제텍㈜) 회장이 23일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2세.
1970년대 대구에 본사를 둔 국제염직을 세계적인 감량가공 전문회사로 키워낸 이승주 회장은 대구경북을 넘어 국내 섬유산업의 부흥을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는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1928년 경남 산청에서 태어난 이 회장은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다소 늦은 37세의 나이에 섬유업계에 뛰어들어 1978년 국제염직 대표에 올랐다.
그는 70년대 초반 폴리에스터 직물 감량가공 기술을 세계 최초로 개발해 섬유·염색업계의 총아로 떠올랐고, 한국염색공업협동조합연합회장(1980~1988년)과 한국섬유산업연합회 이사 및 부회장(1980~1989)을 역임하며 국내 섬유·염색 산업 발전을 진두지휘했다.
특히 한국염색공업협동조합연합회장 재임 당시 이 회장은 세계 최초로 염색업체가 집적한 산업단지를 조성했다. 바로 대구 비산염색공단이었다. 지역 염색업계는 체계적인 오염원 관리, 공동 구매를 통한 비용 절감 등 전용공단의 이점을 누리며 초고속 성장했다. 이를 계기로 부산과 반월 등에 대규모 염색전문공단이 잇따라 들어섰다.
염색업 발전을 이끈 공로를 인정받아 이 회장은 석탑(1982년)·은탑(1987년)·금탑산업훈장(1995년)을 받았다. 2016년에는 매일신문사와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가 공동 제정한 '서상돈상'의 아홉 번째 수상자로 선정됐다.
지역 섬유인들은 이 회장의 비보에 침통해했다. 17, 18대 대구상의 회장을 지낸 노희찬 삼일방직 회장은 24일 조사를 통해 "섬유·염색업계의 큰 별을 잃은 후진들은 청천벽력의 애달픔과 비통함을 감당하기 어렵다"며 "우리나라 염색 산업의 고도화와 선진화를 최일선에서 견인하신 진정한 선구자이자 지도자셨다"고 애통한 심정을 전했다.
이 회장의 후배로 40여 년간 친분을 나눈 김해수 대한염직 회장도 "그분이 없었다면 한국 섬유·염색산업은 지금처럼 발전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애도했다.
고인의 빈소는 대구 성서 계명대 동산병원 장례식장 백합원 1호실에 차려졌다. 발인은 26일이다. 유해는 진주시 선영에 안장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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