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인들의 숨결이 어린 봉수대를 찾아 전국을 다니고 있습니다."
지난달 30일 대구 북구 운봉관방유적연구소에서 만난 박영익(61) 소장은 "봉수대는 단순한 내용 전달 수단이 아니라 선조들의 삶과 지혜를 담고 있다"며 운을 뗐다
그는 2011년부터 10년 동안 강원도부터 제주도까지 방방곡곡 다니며 봉수대, 요망 대를 찾아다녔다. 봉수대는 통신과 교통이 현대사회처럼 발달하기전 연기나 불을 피워 급한 연락을 취하는 통신제도이다. 대부분 수도로 모이는 특징이 있지만, 해안가나 소규모 섬의 경우 일부 지역에서만 의사소통하는 수단으로도 쓰인다. 특히 박 소장은 봉수가 왜구로부터 나라를 지켜내는 역할을 했지만, 사실 봉수대는 오늘도 아무 일 없이 무사히 지나갔다는 평안화(平安火)의 역할을 더욱 많이 했다고 설명했다.
관리가 잘된 봉수대가 있는가 하면 오르는 길조차 찾기 힘든 경우도 있다. 풀이 무성한 계절에는 관리가 되지 않아 찾기도 어렵고, 겨울에는 꽁꽁 얼어 붙어 산을 오르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자세히 기록이 남아있지 않거나, 봉수대가 훼손돼 잔흔만 남아 있기도 해 매번 봉수대 찾아 삼만리다.

박 소장은 34년간 국어교사로 교직 생활을 한 뒤 퇴직했다. 그는 달성 논공중 재직 시절 학생들에게 봉수대 교육을 하기 위해 관련 서적과 인근 봉수대에 관심을 갖게 됐다. 이후 빠르게 내용을 전하는 봉수대가 복잡하면서 치밀한 구성에 매료돼 하나하나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쉬는 날이나 시간만 있으면 봉수대를 찾아 산을 오르다 보니 제2거 봉수, 제5거 봉수 직봉·간봉 등 전국에 안 가본 곳이 없을 정도다. 특히 583m에 달하는 안동시 임하면에 위치한 약산을 면밀히 관찰하기 위해 겨울에만 5번쯤 오르기도 했다.
이처럼 박 소장이 직접 산에 오르며 봉수대를 관찰하는 것은 현장에서 선인들의 생활양식을 발견, 기록하기 위해서다. 봉수제도는 1895년 을미개혁으로 폐지됐다. 그러나 봉수가 사용되고 폐지까지 800년이란 역사를 담고 있다. 봉수대를 관리하던 옛 선조들은 한 번 산에 오르면 닷새동안 그곳에서 생활하며 봉화 업무를 수행했다. 그렇기 때문에 식사, 잠자리 등 선조들의 다양한 생활양식도 엿볼 수 있다. 박 소장은 그들의 삶의 방식, 역경과 고난의 흔적을 후세에 남기기 위해 최선을 다해 산에 오른다. 그는 '현재는 과거를 알 수 있는 열쇠'라는 말처럼 과거에 충실하려면 현재의 견고하고 건실한 토대가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봉수대를 찾기 위해 산에 오르면서 직접 보고 느낀 점을 '불길순례'란 책을 출간했다. 그의 책에는 직접 찍은 사진, 위도, 경도, 고도까지 정확한 위치를 알려줘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봉수대에 가볼 수 있도록 안내하는 특징이 있다. 또한 직접 느끼고, 인근 마을의 옛 이야기를 담아 생생하게 구성했다.
박 소장은 봉수대뿐만 아니라 20년간 향교에서 공부를 해왔다. 또한 관덕정에서 10년 정도 활을 쏘기도 했다. 그는 다양한 활동을 하며 민족혼과 얼을 남기고 계승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는 한반도 모든 봉수대에 가보고 싶다는 목표도 갖고 있다. 박 소장은 북한쪽에 있는 봉수대가 300여 곳이 된다고 하지만 직접 밟지 못하는 땅이다 보니 연구하지 못하고 있다. 그는 기회가 된다면 한반도 봉수대를 모두 조사해 전 세계에 널리 알릴 예정이다. 또한 그는 봉수대를 다녀왔지만 아직 옮기지 못한 내용을 책으로 펴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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