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대구 서구 비산동의 한 주택. 우편함엔 며칠 동안 찾아가지 않은 우유와 우편물이 잔뜩 쌓여 있었다. 홀로 사는 노인이 신경 쓰인 집주인은 무슨 일이 생겼음을 직감했다. 문을 따고 들어간 집 안에서 70대 안모 씨가 발견됐다. 사망한 지 11일 만이었다.
평소 이웃들과 왕래가 없었던 탓에 이웃들은 죽음 후에야 그의 '외로움'을 알게 됐다. 사망 후 11일이 지났지만 그 사이 찾아온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웃 간 관심을 대신해야 하는 건 '공공의 역할'이다. 하지만 공공의 관심은 안 씨의 외로운 죽음을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기초생활수급 대상자였던 안 씨에게 지자체는 매달 70여만 원에 달하는 급여를 지급했다. 하지만 월세와 공과금으로만 절반이 넘는 금액이 빠져나갔다. 노구를 이끌고 새벽이면 일거리를 찾으러 거리를 나서야만 했던 이유다.
건강 관리는 수급자 개인의 몫으로 맡겨졌다. 행정복지센터에선 수급자들의 건강 상태, 거주 환경 등을 파악해 적합한 사회복지 서비스를 지원하고자 정기 모니터링을 하거나, 통장이 종량제 봉투를 배부하며 간접적으로 확인한다. 하지만 행정복지센터는 "이사 후 4년 동안 안 씨가 집을 비운 시간이 많아 제대로 만나본 적이 없다"고 답했다.
대구시에 따르면, 무연고 사망자 수는 점차 증가하는 추세다. 지난해 대구시 8개 구·군의 무연고 사망자는 191명으로 집계됐다. 이는 전년 149명보다 28.2% 늘어난 수치다. 또한 2016~2020년 최근 5년간 증가율은 244%에 달한다.
지난해 무연고 사망자 중 안 씨와 같은 기초생활수급 대상자는 147명으로 76.9%를 차지한다. 이처럼 점점 증가하는 무연고 사망자 중 1인 빈곤가구인 경우가 많다. 이들 중에는 가족·친인척이 없어 무연고 사망자가 되는 경우도 있지만, 가족·친인척 또한 빈곤해 장례비에 부담을 느껴 시신 인수를 거부하는 경우도 많다.
안 씨 역시 외로운 죽음을 맞이하지 않을 수 있었다. 자식이 없었던 그에게 몇 안 되는 가족 중 조카가 시신을 인수하기 위해 찾아온 것이다. 하지만 시신을 인수할 경우, 장례에 드는 비용을 부담해야 하기에 그는 인수를 포기했다. 본인의 건강을 챙길 겨를도 없이 경제적 어려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홀로 몸부림쳤던 안 씨는 죽음 이후에도 외로웠다. 그를 추모하는 장례식도 없이 화장 후 바로 납골당에 안치됐다.
무연고 사망자에 대한 최소한의 존엄을 위한 추가 비용은 80만 원이다. 무연고 사망자 중 기초생활수급 대상자는 장제급여 내에서 최대 80만 원이 지원된다. 비수급자의 경우에도 무연고 사망자일 경우 이에 준하는 수준에서 지원된다. 이 경우 장례 절차나 의식이 없는 단순한 '시신 처리' 과정일 뿐이다.
이에 지자체별로 무연고 사망자 존엄을 위한 장례식을 치를 공영장례 조례를 마련하고 있다. 대구시 8개 구·군에서 유일하게 공영장례 조례를 마련한 달성군의 경우 장제급여의 200%(160만 원) 범위에서 지원한다.
지자체 관계자는 '조례가 없는 이유'로 '예산 부족'을 들었다. 하지만 지난해 대구시 전체 무연고 사망자 191명의 존엄성을 위한 장례에 필요한 추가 금액은 1억5천280만 원에 불과하다.
무연고 사망자 대부분 일생 동안 빈곤과 함께했다. 국가는 제도 내에서 이들의 빈곤을 관리할 뿐 사라진 사회적 관계망, 낮은 사회보장 수준 등 이들의 존엄한 삶에는 무관심했다. 국가는 최소한 죽음 앞에서는 존엄을 보장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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