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농업과 농촌의 상황이 갈수록 위축되고 있다.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른 농산물 시장 개방의 가속화로 수입 농산물은 넘쳐나고 있지만, 농가 소득은 좀처럼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또 기후 위기로 인한 폭염, 한파, 슈퍼 태풍, 홍수 등은 농민들의 삶을 더욱 고단하게 만들고 있다.
농민의 마음은 마치 우산 장수와 소금 장수 아들을 둔 어머니의 심정과 다를 바 없다. 흉년이 들면 줄어든 수확량 때문에, 풍년이 들면 터무니없는 가격 때문에 걱정이 끊이지 않는다.
이렇다 보니 젊은이들은 농업을 기피하고 국민의 농업에 대한 관심도 갈수록 멀어지고 있다. 국민 1인당 쌀 소비량은 지속해서 감소하고 있다. 2020년 국민 1인당 연간 쌀 소비량은 57.7㎏으로 1986년 127.7㎏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농촌에서 갓난아기의 울음소리가 끊긴 것도 이런 상황과 무관치 않다.
이처럼 엄중한 현실 속에서 농업과 농촌의 다양한 공익적 가치와 그 중요성을 마냥 경시하고 외면만 해도 되는지 자문해볼 필요가 있다.
농업은 식량 공급기지의 역할을 한다. 사람은 반드시 먹고 살아야 하기에 농업은 우리의 먹거리를 생산하는 필수 불가결한 산업이자 생명줄이다. 이 때문에 쌀을 포함한 식량 자급률 확보는 사회안전망의 척도이기도 하다. 지금 전 세계는 안정적인 식량 확보에 비상이 걸렸다. 식량의 무기화가 확실시되는 상황에서 농업의 식량안보적 기능은 경제적 측면만으로 계산할 수 없는 그 이상의 가치가 있다.
당장 가격 경쟁력이 없다고 농업을 외면하면 농산물 수출국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식량 종속국' 내지는 '농업 식민국'으로 전락하는 것은 불을 보듯 자명하다.
"식량 자급 없이는 중진국이 선진국으로 진입할 수 없다"는 노벨상 수상자 사이먼 쿠즈네츠의 주장을 명심해야 한다.
또 농지는 단순히 식량 생산 수단의 의미를 넘어 생물다양성 유지와 물관리를 통한 홍수 예방으로 생명 안전과도 직결돼 있다.
논은 거대한 저수지로 여름에 홍수 조절 기능을 갖는다. 춘천댐의 저수량을 약 1억5천만t으로 추산한다면 현재 우리나라의 논은 이러한 댐 24개를 보유하는 것과 맞먹는 역할을 하고 있다. 나아가 논에 가둬둔 물은 대부분 땅속으로 침투해 막대한 양의 지하수를 공급해주고 있다.
농지는 대기를 정화하는 '산소 발생기' 역할도 겸하고 있다. 논에서 자라는 벼는 광합성 작용을 통해 대기를 정화하며 대기 온도를 낮춰준다.
더불어 농업과 농촌은 전통문화와 자연경관을 보전하는 보물 창고이기도 하다. 가까운 상주를 비롯해 남해 등지의 '다랑논'은 형언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이런 까닭에 유럽에서는 농민을 국토의 자연환경을 관리하는 '정원사'(Gardener)라고도 부른다.
각박한 삶을 사는 현대인들에게 농촌은 고향의 향수와 힐링의 장소이기도 하다. 또 청소년들에게는 자연에서 배우고, 함께 살아가는 지혜를 가르치는 자연생태계의 산 교과서 역할도 한다.
이처럼 농업과 농촌의 공익적인 가치는 헤아릴 수 없이 많으며 다양하다. 단지 돈으로만 환산할 수 없는 다원적 기능을 가진 산업이자 공간이다. 따라서 산업으로서의 농업은 공공재적인 가치를 기준으로 다시금 재조명되어야 마땅하다.
'농업인의 날'(11월 11일)을 계기로 그동안 농업과 농촌을 소홀히 여기거나 홀대하던 잘못된 인식을 바로잡는 인식의 대전환이 필요하다. 농업과 농촌 그리고 농민이 웃을 수 있어야만 국민도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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