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문한 책이 따로따로 왔다. '오 마이 독, 오 마이 갓'이란 제목, 개에 관한 책이다. 흑백의 아트북 형식을 빌린 디자이너의 편집이라 심플하다.
저자는 그래픽 디자이너 서기흔. 무려 600쪽에 달하는 아주 두툼한, 말하자면 네 발 달린 철학자에 대한 탐구서라고 해야 되나 굳이 거창하게 표현하자면, 인간에게 맹목적 헌신을 다하는 견공들에게 그래도 염치있는 사람들이 다소의 경의를 표하는 헌사인 것은 분명하다.
큼직한 타이포로 정리된 내용은 인간과 반려견의 관계를 짧게 요약한 은유들로 넘쳐나지만, 그 사이에 걸린 삽화들이 무릎을 치게도 한다. 많은 여백과 공간에 이런 저런 낙서를 하며, 읽는 재미도 눈의 호사도 넉넉하다. 부지런히 뒤적이면 두어 시간이면 족히 다 읽는다.
'개'는 인간의 보조자를 넘어 보호자 역할까지 한다. 인간이 개에게 들이는 정성은 상상을 초월한다. 반려견은 인간과 더불어 같은 공간에서 밥 먹고 같은 곳에서 잠자는, 확고한 가족 구성원으로까지 진화한 지 오래다.
그러나 무엇보다 인간을 가장 충직하게 섬기면서도 인간으로부터 갖은 홀대를 당하는 동물이기도하다. 애완견 인구가 얼추 700만 명이라는 시대에 비근한 예를 들어보자. 사람들 입에 붙은 개를 빗댄 상투적인 욕은 차고 넘친다. 이처럼 개에 관한 인간들의 잣대는 다분히 이중적이고 어쩌면 자기모순에 가깝다.
또 하나의 책은 비주얼 시대에 비주얼이 쭉 커진 책이다. '세상을 향해 짖는 즐거운 상상'이란 제목이 보인다. 같은 저자다. 마찬가지로 개에 대한 프로젝트라고 해도 무방한, 아무튼 훅하고 빨려가거나 혼자 킥킥대며 읽을 수 있는 책이다. 두터운 책등을 손으로 쓸고, 개들이 하는 것처럼 킁킁 냄새까지 맡으며 흐뭇한 상상을 시작했다.
"개들은 짖거나, 사랑을 나누거나, 졸거나, 배회하거나 했다. 하지만 어떤 개도 거짓말을 하거나 편을 지어 패싸움을 하지는 않았다."
제목 활자 사이에 쥐똥처럼 조그맣게 들러붙은 표지 글이다. 명조체를 변형시킨 타이포그래피가 위에서 아래로 무작위로 박혀 있고, 오른쪽 아래 암수 두 마리 개가 숨가쁘게 흘레붙는 먹그림이 있다. 특히 개를 그린 삽화들이 거칠지만 기발하다. 개의 형상을 의인화하거나 상징, 또는 사실적인 그림들을 보는 눈은 여간 즐거운 게 아니다. 'DOG-GOD'라는 영문과 '오 마이 독 오 마이 갓'의 표제도 눈에 들어온다. 눈치채겠지만 앞의 책이나 이 책의 표지를 보면 '신과 개는 동의어'라는 내용의 혐의를 짙게 받는다.
두 권의 책은 이미지와 텍스트를 동시에 연결해 준다. 인간과 개의 관계 항이거나 일종의 보고서다. 개에 관한 문화사적 담론이라고 해도 무관하다. 소설가, 교수, 평론가들이 개를 해석하는 발랄하고 신통한 재미가 있다. 책의 대부분은 드로잉과 낱말, 짤막한 문장들로 자간과 행간이 느슨하다. 하지만 주의를 게을리해선 안 된다. 책을 덮고 나면 곧 칼날같이 작금을 풍자하는 아포리즘이 몰려온다. 그래서 더욱 '개에 관한'한 도대체 끝장낼 수 없는 기억으로 오래 남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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