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꽃이 아닌 적은 없었으니

김지혜 그림책서점 '소소밀밀' 대표

김지혜 그림책서점
김지혜 그림책서점 '소소밀밀' 대표

나이가 들어가면서 좋은 점이 있다면, 아름다운 것을 볼 수 있는 시야가 넓어지고, 식견은 깊어진다는 점이다. 그 중에 하나가 꽃이다. 어렸을 때는 꽃이 예쁜 줄 몰랐다. 꽃은 그저 축하할 일, 기념일에 주고받는 관습 같은 거라 생각했다. 꽃의 아름다움을 먼저 보지 못하고, '시들면 버릴 텐데'라는 생각부터 했다.

시들 수 있기에 꽃이 더 아름답다는 것을 그때는 몰랐다. 꽃은 생명과 삶처럼 유한하다는 것을 한 송이 꽃으로 드러내준다. 그 의미를 모른다 해도 아름다움을 보고 반하지 못했던 그 시절이 안타깝다. 꽃이 주는 기쁨과 위로를 조금 빨리 알았다면 좋았을 텐데.

기분이 처지거나 변화를 주고 싶을 때면 꽃집을 찾는다. 마음에 들어오는 꽃을 한 아름 사들고 나와, 운전석 옆자리에 꽃 한 다발을 놓고 운전을 하면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 바쁘고 복잡한 일상 속에서 꽃을 바라보고 만지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위안이 되었다.

며칠 전 인터넷 검색을 하다 화훼농가에 대한 기사를 보게 되었다. 코로나로 각종 행사가 취소되면서 화훼농가는 어려운 시기를 맞았다. 최근 '위드코로나'로 미루었던 행사들이 조금씩 늘고 있지만, 그 여파는 미미하고 여전히 어렵다는 기사였다. 집안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소소하게 꽃 주문을 하는 사람들은 늘어났지만, 시즌이면 나오는 꽃들이 대량으로 소진되지 않으니 예전만 못하다는 말도 맞을 것이다.

그날은 다른 날과 다르게 온라인으로 꽃을 농장에 직접 주문했고, 며칠 뒤 배송 온 박스를 풀어보고 깜짝 놀랐다. 주문한 꽃 외에 다른 꽃이 들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족히 스무 송이는 되어 보이는 장미 다발에 작은 쪽지가 붙어 있었다.

'두면 버릴 것 같아 그냥 드립니다.' 이걸 보내는 화훼농가 사장님의 마음은 어땠을까. 버려지지 않고, 신문지의 물기를 머금고 잘 도착해준 장미가 대견스러웠다. 나는 장미를 화기에 꽂아 서점 문 앞에 두었다. 햇살에 반짝이는 빨간 장미가 더없이 따뜻해 보였다.

배송 후기 메모란에 이렇게 적었다. '사장님 힘내세요. 덕분에 많은 사람이 아름다운 꽃을 바라봅니다. 곧 다시 좋아질 거예요.'

버려지는 꽃이라고 해서 꽃이 아닌 적은 없었으니, 더 애틋하게 꽃을 바라본다. 천천히 꽃잎을 떨어뜨리는 모습에 마음이 고요해진다. 꽃은 다시 생각해도 위로와 기쁨을 주는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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