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친구와 이야기 중에 별안간 갤러리로 길을 나섰다. 오늘이 전시 마지막 날인데 갈까, 말까 고민했다며 친구가 SNS에서 한 일러스트 작가의 작품을 보여주던 참이다. 그러다 동시에 "지금 가볼까"라고 마음이 동하여 전시 마감 두어 시간을 남겨두고 부랴부랴 출발했다.
10년 전 호주 여행에서의 풍경을 오일파스텔로 그린 작품이 전시된 작은 공간을 작가가 지키고 있었다. 작품 관람을 마치고 엽서 굿즈 3장을 사서 나오려는데 작가분이 겸연쩍어하시며 인사를 건네 왔다.
"오늘이 전시 마지막 날인데요, 이렇게 와 주셔서 너무너무 고맙습니다. 코로나 때문에… 이런 시기라 걸음하기 어려운데 이렇게 와 주셔서 더 감사해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며 수줍어하면서도 조곤조곤 차분히 말을 건넸다.
몇 마디 짧은 말을 서로 주고받은 후 정신을 차리니 친구와 나는 전시장 앞 주차장에서 차마 발을 떼지 못하고 우두커니 서 있었고, 그러다 둘이 눈이 마주치자마자 "어, 왜 찡하죠", "나, 지금 울컥했어요!"라며 함께 외쳤다.
그렇게 차마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형언할 수 없는 기분으로 어정쩡하니 한참을 서 있었다. '제가 왜 엽서를 3장만 샀을까요', '전시 마지막 날 와 주어 고맙다는 말에 마지막 날인 걸 알고 부랴부랴 급히 왔다고 말할 걸 왜 속으로만 생각했을까요'라는 등의 별의별 소용도 없는 후회를 다투어 고백하며….
우리가 그렇게 울컥하고 찡한 마음이 든 것은 아마 부대낌과 북적임이 꺼려진 코로나 시대의 젊은 예술가가 겪어야 할 괴로움, 어려움, 외로움이 찰나 전해졌거나 누군가의 애정과 정성이 집중된 장소에 와 있다는 걸 새삼 느낀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런데 또 하나는 그녀에게서 느껴진 진정성 때문인 것 같다. 다정함과 따스함, 이런 것들이 진심으로 전해질 때 주는 울림이 있다. 친구는 전시장 방명록 옆의 "… 너무너무 고맙습니다"라고 끝나던 안내문에서 '아, 이 사람은 사람과 세상을 이런 태도로 대하겠구나'라는 마음이 느껴져 사진으로 남겼다며 보여주었다.
'너무'가 아니라 '너무너무'라고 써둔 마음과 어색함을 견디면서도 자신의 고마움을 끝내 전하던 마음이 아마 그녀가 세상을 대하는 태도일 것이다. 그와 우리가 다른 점은, 그는 '다정'을 말로 표현해 전했고 우리는 '다정'을 속으로 삼킨 것이라고 '우리에게 일어난 일'을 정리하며, 돌아오는 길 내내 세상을 대하는 태도와 다정에 관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다른 한편으론 각종 미디어나 매체를 통해 거친 표현과 정제되지 않은 언어에 너무 많이 노출된 세상을 살다보니 이런 진심 품은 부드럽고 연한 말에 이토록 마음이 흔들리나 싶기도 했다. 그래서 든 생각이다. 내 말에 다정을 더하고 싶다고. 특히 고마움이나 감탄, 칭찬과 같은 긍정의 마음은 수줍거나 머쓱하다는 이유로 주저앉히거나 흘려버릴 것이 아니라 진심을 다해 다정히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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