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먼스토리에 멜로, 권력대결 등 무수히 시도된 의학드라마 속 이야기들은 이제 우리에게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졌다. 그래서일까. 이제는 귀신이 등장하는 판타지 설정의 의학드라마까지 등장했다. tvN 월화드라마 '고스트닥터'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신이 없다면 귀신이라도
신들린 의술을 가진 천재 외과의사와 일에 대한 사명감도 의욕도 없는 금수저 레지던트의 만남. 이런 만남을 떠올리게 하는 의학드라마의 스토리란 다소 뻔하다. 천재 외과의사의 질타와 그로 인해 개과천선하는 레지던트의 성장담 같은 게 그것이다. 하지만 tvN 월화드라마 '고스트 닥터'는 이 뻔한 구도를 허락하지 않는다. 제목에 담겨 있듯이, 그 신들린 의술의 천재 외과의사가 사고로 코마 상태에 빠진 고스트로 등장하기 때문이다. 은상대병원의 '금손 중의 금손' 외과의 차영민(정지훈)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그런데 고스트가 되어 병원을 떠도는 그가 유일하게 빙의할 수 있는 인물이, 하필이면 흉부외과 레지던트 1년차로 똥손 중에 똥손이지만 재단 이사장의 손자인 금수저 고승탁(김범)이다. 머리는 좋아 의학지식을 줄줄이 외우곤 있지만 수술실에 들어오면 부들부들 손을 떠는 똥손. 하지만 차영민이 빙의되면서 순식간에 은상대병원의 어려운 수술을 도맡아 하는 금손이 된다. '고스트 닥터'는 고스트가 된 천재 외과의 차영민이 고승탁의 몸을 빌려 그와 함께 위급한 환자의 생명을 살리면서, 병원 내에서 권력 구도를 두고 벌어지는 모종의 음모를 파헤치는 의학드라마다.
이러한 빙의 판타지라는 상상은 아마도 위급한 상황에 의사나 환자 모두 '신'을 찾는 그 간절한 마음에서부터 비롯된 것일 게다. 신이 없다면 '귀신에게라도' 도움을 요구하고 싶은 그 간절함. 흥미로운 건 이러한 빙의 설정 판타지를 통해 '고스트 닥터'가 그리고 있는 다양한 결의 이야기들이다. 저마다의 사연을 가진 위급한 환자를 구해내는 의사의 휴먼스토리는 물론이고, 병원과 재단에 야심을 품고 있는 고승탁의 이종사촌형 한승원(태인호)이 그룹 후계자가 되려는 장민호(이태성)와 손잡고 벌이는 병원 내 음모를 파헤치는 스릴러가 더해져 있다. 또한 빙의 관계로 맺어진 차영민과 고승탁의 고스트 판타지 스토리와 더불어 두 사람 간의 브로맨스 코미디, 또 차영민의 헤어진 여자친구 장세진(유이)과의 멜로도 빼놓을 수 없다.
고스트 설정을 가져왔지만 이 의학드라마에는 다양한 장르가 뒤섞여 있다. 그래서 때론 긴박해지고 때론 코믹하다가 때론 분노를 유발하는 다양한 감정을 느끼게 해준다. 의학드라마 하면 어딘가 진중하고 진지했던 분위기를 먼저 떠올린다면, '고스트 닥터'는 여기서 조금 벗어난 색다른 시도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빙의 판타지의 흥미로운 변주
사실 '고스트 닥터'가 설정하고 있는 빙의 판타지 그 자체만으로는 그리 색다른 스토리를 기대하게 만들지는 않는다. 결국 똥손이 금손 되는 판타지 정도가 아닐까 싶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드라마는 이 판타지의 변주가 흥미롭다. 처음에는 환자를 살려야 한다는 절실함 때문에 저도 모르게 고승탁의 몸에 빙의해 수술을 하는 차영민의 이야기가 펼쳐지지만, 금세 이 고스트에게도 병원을 벗어나면 위험해지는 '한계 설정'이 부여된다. 즉 코마 상태로 누워있는 차영민의 몸에 가까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병원 밖으로 홀로 나갈 수 없다. 나가려면 고승탁의 몸을 빌려야 하며, 나갔다가도 자칫 행인에게 부딪쳐 혼이 빠져나가면 위험해질 수도 있다는 설정이다. 그래서 실제로 병원 바깥에서 행인과 부딪쳐 혼이 빠져나간 차영민 고스트가 죽을 뻔한 상황이 발생하고 이를 가까스로 넘기게 되는 아슬아슬한 스릴러가 만들어지기도 한다.
빙의 판타지의 변주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차영민 고스트의 존재를 모르는 줄 알았던 고승탁이 사실은 어려서부터 '귀신을 보는 능력'을 갖고 있었다는 게 밝혀지고 이로써 차영민과 고승탁의 공조는 더 단단해진다.

고스트인 차영민은 병원 곳곳을 마음껏 돌아다니며 한승원과 장민호의 음모를 파헤치고 후배 의사 안태현(고상호) 또한 이에 동조한 후 갈등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된다. 또한 병원 내에 자신처럼 떠도는 다른 고스트들과도 소통할 수 있는 차영민은 그들이 겪은 일이나 혹은 진심 또한 들을 수 있게 된다. 이로써 차영민과 고승탁의 공조는 고스트계와 인간계 사이를 넘나들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판타지를 가능하게 한다.
여기서 중요해지는 건 이러한 빙의 관계를 통해 보여지는 고승탁의 성장스토리에 담긴 은유다. 사실 의학드라마들이 당연한 것처럼 그리는 놀라운 수술을 아무렇지도 않게 척척 해내는 의사들의 모습은 처음부터 가능했던 것이 아닐 게다. 그들 역시 고승탁처럼 수술실에서 메스를 들고 벌벌 떨던 시절이 있었을 테니 말이다.
결국 환자를 살리겠다는 그 의지가 마치 '신들린 듯한' 수술에 대한 용기를 끌어내는 게 아닐까. 그래서 이 차영민의 빙의로 인해 고승탁이 성장해가는 과정은, 선배들의 독려와 도움으로 성장해가는 후배 의사들의 현실을 에둘러 그려낸다. 툭탁대면서도 애틋한 이 특별한 빙의 브로맨스가 남다른 훈훈함을 주는 이유다.

◆의학드라마의 장점과 한계
사실 '고스트 닥터'는 판타지 설정이 주는 흥미로움이 분명하지만, 주로 진지한 스토리를 담아왔던 기존 우리 의학드라마와 달리 이방인같은 느낌을 주는 면이 있다. 즉 우리네 의학드라마들은 생명이 오가는 공간인 병원을 배경으로 한다는 점에서 휴먼스토리든 권력대결의 드라마든 묵직한 무게감을 담는 경향이 있었다. 그런 점에서 보면 수술에 있어서도 고스트 빙의 같은 과장된 장면들이 들어간 '고스트 닥터'가 이질적으로 보이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하다. 주로 과장된 극화가 많은 중국드라마 같다는 시청자들의 평가가 심심찮게 보이는 건 그런 이유다.
그래서 시청자들에게 그만한 호응을 얻을 수 있을까 싶지만 의외로 이 드라마는 최고 시청률 6.5%(닐슨 코리아)를 기록하는 괜찮은 성적을 내고 있다. 이유는 뭘까. 그것은 오히려 무겁지 않고 적당하게 다양한 장르의 결을 즐길 수 있도록 한 것이 오히려 시청률 같은 성적에는 호재로 작용하고 있어서다.
최근의 시청자들은 너무 진지하거나, 무겁거나, 어두운 드라마를 기피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그것보단 좀 더 기분 좋은 카타르시스를 즉각적으로 제공하는 이른바 '사이다 드라마'를 선호한다. 이렇게 된 건 코로나19의 장기화로 인해 더 어려워진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 드라마를 하나의 작품으로서 성찰적으로 들여다보는 시각보다, 그 시간만이라도 위로받고 편안하게 몰입할 수 있는 여가로서 들여다보려는 시각이 더 많아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사이다 드라마로서 적당히 즐길 수 있는 의학드라마라는 장점을 지닌 '고스트 닥터'는, 바로 그런 점 때문에 드리워진 한계도 어쩔 수 없어 보인다.
의학드라마는 삶과 죽음이 오가는 순간에서 등장하는 긴박하고 묵직한 인간 성찰의 이야기가 그 원천적인 힘이다. 하지만 고스트라는 판타지 설정은 이미 죽음 이면의 또 다른 세계를 이어붙이고 있다는 점에서 이런 절실한 힘을 상쇄시킨다. '고스트 닥터'는 그래서 설정과 상황의 변주를 통해 보는 내내 적당히 흥미롭고 즐거울 수 있는 드라마임에는 분명하다. 하지만 그 이상의 묵직한 메시지를 던질 수 있을 지는 아직까지 의문이다.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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