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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칼럼] ‘알이백’은 알면서 ‘넷 제로’는 모르나

지난 3일 오후 서울 여의도 KBS 공개홀에서 열린 방송 3사 합동 초청
지난 3일 오후 서울 여의도 KBS 공개홀에서 열린 방송 3사 합동 초청 '2022 대선후보 토론'에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왼쪽)가 기념촬영을 마친 뒤 자리로 돌아가고 있다. 오른쪽은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 연합뉴스
정창룡 논설주간
정창룡 논설주간

꽤나 든 '척'하고 싶었나 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알이백'이니 '택소노미' 같은 일반 국민들에게 생소한 용어들을 대통령 후보 토론에 들고나와 공세를 폈다.

굳이 설명하자면 '알이백'(RE100)은 '재생에너지(Renewable Energy) 100%'의 줄임말이다. 기업이 사용하는 전력량의 100%를 2050년까지 재생에너지로 충당하겠다는 용어다. 기업이 '알이백'을 시작한 배경은 기후 변화 때문이다. 정부 정책이 아니다 보니 강제성은 없다. 그저 글로벌 기업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진행되는 캠페인 정도다. 이것이 의미를 갖는 것은 기후 재앙을 막기 위해 탄소 순배출량을 '0'로 줄인다는 '넷 제로'(Net Zero)를 앞세웠을 때다.

유엔은 이번 세기말까지 지구 온도를 1.5℃ 이하 상승으로 억제한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이를 위해 2050년까지 '넷 제로'를 실현해야 한다고 본다. 이번에 EU가 그린 택소노미(Green Taxonomy)에 원자력을 포함시킨 것도 이 때문이다. 원자력은 가동 중에 탄소를 배출하지 않는다. 원료인 우라늄 정제까지 전 과정을 포함해도 탄소 배출량이 풍력과 거의 같고, 태양광보다도 적다. 프랜스 티머맨 EU 수석기후담당관의 "원자력의 (탄소) 배출이 '0'라는 것은 매우 중요한 팩트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는 말이 모든 상황을 함축한다.

이미 세계는 '넷 제로'에도 다가서면서 커지는 원전 시장도 선점하려는 각축전이 치열하다. 일찌감치 소형 원전 시장에 뛰어든 영국의 롤스로이스사의 톰 샘슨 CEO는 "어떤 나라건 원전 없이 넷 제로를 달성하는 것은 매우매우 어렵다(very very difficult)"는 말로 시장 선점에 나선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영국 정부도 2억7천800만 달러를 펀딩하며 적극 지원하고 있다. 롤스로이스는 정부와 함께 2050년까지 470㎿ 규모 소형모듈원전 16기를 건설한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일찌감치 원전을 탄소 배출 없는 무공해 전원으로 명시한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낡은 원전을 보수, 계속 가동하기 위해 60억 달러를 쓰기로 했다. 빌 게이츠가 설립한 차세대 원전 개발 기업 테라파워도 지원한다. 프랑스 마크롱 대통령도 이번 5월 재선을 앞두고 거의 20년 만에 원전을 새로 짓겠다고 나섰다. 중국과 러시아도 이미 원전을 녹색에너지로 선언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넷 제로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2020~2050년 원전이 현재의 두 배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한다. 영국 국립원자력연구소는 2035년 차세대 소형 원자로 시장 규모만 390조~620조 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세계 각국 정부가 원전 산업 육성에 팔을 걷고 있는 것이다. 핏치북에 따르면 미국에선 원자력 스타트업들이 2021년 1~9월 그러모은 자금이 6억7천600만 달러로 지난 5년간보다 많다.

그럼에도 우리나라는 여전히 K-택소노미에서 원자력을 제외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5년간 이념적 탈원전에 치우쳐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갈랐다. 이 후보 역시 '넷 제로'의 대들보 역을 할 원전에는 부정적이다. 자신의 정책은 탈원전 아닌 감원전이라고 한다. 문 정부가 탈원전이란 표현 대신 에너지 전환이라고 한 것이나 도긴개긴이다. 알이백을 하려면 '넷 제로'가 먼저고 '넷 제로'를 하려면 현재로선 원전이 절대적이다. '알이백'도 모르느냐면서 감원전을 주장하는 자체가 모순이자 말 장난이다. 대통령을 꿈꾼다면 언어유희보다는 나라를 위한 큰 그림을 그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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