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간에 의견이 충돌했다. 끓어오르는 화와 열기에 휩싸여 이글거리는 서로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막 서론에 들어갔을 즈음이었다.
남편이 문자 한 통을 받았다. 주말에 다녀온 대중목욕탕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했으니 검사를 받으라는 내용이었다. 남편은 얼굴이 붉은 채로 집을 나섰다. 저녁 아홉 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나는 전염병이 염려되면서도 내가 이길 수 있는 전략을 세우는 것도 멈추지 못했다. 곧 재개될 전장에 써먹을 말날을 벼리며 남편을 기다렸다. 하지만 검사하는 사람이 많아 늦다는 연락이 왔다. 결국 잘잘못을 가리지 못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악몽을 꿨다. 그 여운이 감정을 희롱하며 화를 돋우었으니, 밤새 다툼이 전개되어 절정에 이른 셈이었다. 거기다 남편은 자가 격리라 출근하지 않았다. 완충시간이 사라졌다. 우리는 아침부터 다시 말싸움을 벌였다. 늘 그랬듯 의견 차가 봉합이 된 것처럼 마무리가 됐지만 균열이 남았다. 그곳에서 언제 다시 용암이 분출할지 몰랐다.
웃기는 건 이거였다. 그런 서먹한 시간에도 나는 "결과는 언제 나와" 혹은 "무슨 증상은 없어"라는 질문을 잊지 않았고, 점심 같이 먹자며 남편을 TV 앞에서 일으켰다. 전염병이 무섭기는 한가 보았다. 온전히 싸움에만 집중할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바이러스의 유무가 싸움을 멈추게 하지도 못했다. 부스터 샷을 맞지 않은 내가 특히 불리했는데 말이다.
그런 기묘한 마음의 경계에서 아무래도 얼이 빠진 게 분명했다. 점심을 먹으면서 남편이 숟가락을 담근 찌개를 나도 떠먹었다. 사실 그 일도 몇 시간이 지나서야 생각났다.
저녁을 먹기 전에 혼자 산책을 나가서였다. 나는 땀을 흘린 후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가족감염이 많다는 기사를 기억했다. 그 기억이 나자, 바이러스 전염보다 우리의 말다툼이 더 중요했다는 희한한 사실을 깨달았다. 병에 걸릴 확률은 반이었지만 사람 사이에 힘겨루기는 확률의 문제가 아니었다.
죽을 때 죽더라도 다툼은 계속되어야 했다. 그건 삶의 문제이기 때문이었다. 살아 있는 자만이 싸울 수 있었다. 그러니까 다툼은 초와 분이라는 생의 순간을 이어가는 행위였다. 그에 비해 죽음이라는 마지막은 갑자기 나타나는 새로운 세계가 아니라, 일상의 연속성이 끊기는 것이라는, 사소한 알아차림. 그 생각이 들자 무척 홀가분하고 자유로운 기분이 들어 설레기까지 했다.
내게 죽음은 늘 막연하지만 두려운 저쪽 세계였다. 하지만 이제는 부부다툼을 하다가 돌림병에 걸리면 만나게 되는 그 무엇이라는 것을 안다. 당장의 갈증을 해결하거나 이길 궁리만 하면서 살면 되었다.
흐린 밤하늘에서 먼지처럼 눈이 듬성듬성 내리고 있었다. 탄성이 나왔다. 눈이 첫사랑의 일부분이듯 죽음은 일상의 한 자락이었다. 세상은 가장 아름다운 환상과 그것의 멈춤이 공존하는 곳일 뿐이니, 미리 겁낼 일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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