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3년 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 당시 인명을 구하러 역으로 뛰어 들어간 A(58) 씨는 매일 밤 "살려달라"는 환청에 시달린다. 더 많은 사람을 구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A씨는 참사 이후 정신 이상을 겪으며 노숙 생활을 반복했다.
B(67) 씨도 극적으로 목숨은 구했지만 지난 19년 간 고통 속에서 살았다. 사고로 기도가 망가진 B씨는 수술을 11번이나 받았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5분마다 나오는 끓는 가래와 잦은 기침으로 정상적인 일상 생활이 불가능하다.
대구 지하철 참사 19주기를 맞는 가운데 부상자 130여명은 여전히 참사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17일 대구시와 대구지하철참사부상자가족대책위(이하 부상자대책위)에 따르면 현재까지 생존한 131명의 참사 부상자 가운데 90% 이상이 정신 질환을 앓다가 가정이 와해되거나 노숙 생활로 내몰리는 등 극심한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다.
부상자대책위 관계자는 "부상자 대다수는 제정신으로 살아가지 못한다. 극단적 선택을 시도하고 학교, 직장 생활 적응에 실패한다"며 "가족들 역시 점점 지쳐가면서 갈 곳이 없어 거리로 내몰리고 있다"고 말했다.
대구시는 지난 2019년 '대구 지하철 화재 사고 부상자 의료지원 조례'를 제정해 매년 1억원의 예산으로 의료비와 심리치료비를 지원하고 있다. 부상자가 심리치료를 원할 경우 대한적십자가 운영하는 재난심리회복지원센터에서 1인당 연간 최대 40만원을 지원받을 수 있다.
하지만 지난해 전체 예산 1억원 중 의료비, 장례비 등으로 7천700만원이 사용됐을 뿐 심리치료비를 지원받은 부상자는 단 1명도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구시에 따르면 부상자 2명이 회복지원센터에서 6건의 심리 상담을 받았지만 치료까지는 이어지지 않았다.
부상자들은 '참사 피해자'라는 사실을 드러내기가 쉽지 않다고 입을 모은다. 심리치료를 받기 위해 센터나 병원에 방문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결정이라는 것이다. 이동우 부상자대책위원장은 "전수조사를 통해 숨어 지내는 부상자의 일상 회복을 도울 세밀한 방안을 찾아야한다"고 말했다.
대구시도 올해 상반기 중 부상자를 대상으로한 실태조사를 계획하고 있다. 부상자 실태조사를 통한 맞춤형 지원책을 마련하기 위해서다. 부상자들도 일괄적인 치료비 지원보다는 사례별 접근이 필요하다는 데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대구시 관계자는 "경제 상황 뿐 아니라 개개인별 심리적인 트라우마도 함께 검토해볼 예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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