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레이터가 마치 원두 거름망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지난달 23일 대구 중구 봉산문화회관 인근의 조용한 카페에서 만난 조동오 봉산문화회관 큐레이터가 대뜸 이런 말을 꺼냈다. 커피 핸드드립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그는 "큐레이터는 다양한 사람들의 예술적 요구(원두)를 잘 걸러내 좋은 결과물(커피)를 만드는 역할을 해야한다. 쏟아지는 작품들(물) 속에서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고르게 요구들을 만족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큐레이터가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 개인적인 작업을 해오다 우연한 기회로 미술협회 사무국장을 맡게 됐다. 작가들을 많이 만나며 함께 전시를 준비하는 게 의미있는 작업이라 생각됐다. 다양한 작품들을 보고, 다른 작가의 작품을 전시장에 펼쳐보이며 대리만족을 느꼈다고 할까. 전시를 구현하는 것도 하나의 작업이라고 생각한다.
한편으로 작가들을 많이 알게되다보니, 그들의 삶이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 비춰지고 읽혀질까에 대해 많이 생각했다. 그걸 보여주는 게 곧 전시였다.
큐레이터 일을 계속 해나갈 수 있는 동기는 '희열'이다. 큐레이터가 겉으로 보기에는 깔끔하고 좋은 일만 할 것 같지만, 전시를 구현해내는 과정에서 일이 많다. 그런 과정을 거쳐 오픈했을 때 느끼는 희열은 새롭게 도전할 수 있는, 또다른 발견의 동기가 된다.
▶전시 기획부터 오픈까지 어떤 과정을 거치나요.
- 우선 어떤 주제를 전달할 지 고민한다. 역사와 동시대적 상황, 사회적 이슈뿐만 아니라 대중에게 전달할 방법 등도 함께 고려한다. 주제가 정해지면 그에 맞게 기획한다. 중요한 건 작가 섭외다. 주제에 맞는 작가와 작품을 섭외해야하는 데, 보통 작가의 개인 스케줄, 전시기간, 작품 출품규모, 일정기간 내 개인전 개최 여부, 작품 간 이질성, 작가간의 관계까지 다양한 조건을 다 따져봐야해서 2~3배수의 후보를 두고 섭외 작업을 진행한다.
작가 섭외가 완료됐으면 작가들로부터 대표 작품 이미지와 프로필, 작가노트, 질문에 대한 답변 등 자료를 받아 세밀화하는 작업을 거친다. 이와 함께 전시 설치 일정을 잡는다.
설치하는 날에는 리플렛용 작품 설치 사진을 찍고 작가 인터뷰 영상 등을 제작한다. 전시장마다 다르지만 우리는 리플렛에 현장감 있게 작품 설치 사진을 넣는다. 이 사진과 함께 전시 소개 글을 적어 리플렛, 포스터 등 인쇄물 제작에 나선다. 작품 설치부터 오픈 전인 이 때까지가 굉장히 빡빡한 시간이다.
원래 전시 오픈날 오픈식을 열지만, 지금은 코로나19 탓에 도슨트설명회로 대체했다. 작가가 직접 도슨트들에게 작업에 대해 설명하고 질의응답을 갖는다. 차후 오픈식이 재개되면 일반인, 도슨트가 함께 하는 작가와의 대화 시간이 생길 듯하다.
오픈 이후에도 수시로 도슨트 교육과 보도자료 배포, SNS 홍보, 미술보험 등 행정적 절차가 이뤄진다. 전시장에서 작품이 모두 빠져나가고 텅 비워질 때까지 계속 신경써야 한다.
매년 10월쯤이면 내년 전시계획이 다 짜여져있다. 지금도 내년에 어떤 전시를 선보일지 벌써부터 아이디어를 모으고 있는 단계다. 절대 즉흥적으로 여는 전시는 없다. 작가들도 무엇을 선보일지에 대한 고민과 작업시간이 필요하다.
▶미술의 대중화에 대한 고민이 깊을 것 같습니다.
- 대중화라 함은 '대중적 미술의 대중화'와 '실험적 미술의 대중화'로 나뉠 수 있을 듯하다. 즉 미술을 보기 쉽게 접근하도록 할 것이냐, 어려운 것을 쉽게 해석하도록 할 것이냐의 문제일텐데, 나는 이를 함께 해야한다고 생각한다.
봉산문화회관은 대중 분포도가 넓다. 요구가 다 다르기에 분포를 어떻게 할 것인가 잘 생각해야한다. '또다른 가능성' 기획전시는 장르 대중화에 초점을 두고 있다. 지난해 서예·문인화, 올해 풍경화에 이어 내년에 공예를 선보일 계획이다. 전통미술도 현대미술 못지않게 친근하게 접근할 수 있다, 공예 작품도 색다르게 해석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어서다.
대중적 미술의 대중화가 또다른 가능성 전시라면, 실험적 미술의 대중화는 '유리상자' 기획전시다. 작가는 물론 관객들이 평면적으로 익숙한 것에 함몰되지 않고 새로운 가능성을 볼 수 있도록 하는 전시다. 이외에도 심리학과 미술을 연계한 프로그램 등 대중화를 다양한 방법으로 접근하려는 시도를 지속하고 있다.
▶봉산문화회관 전시공간의 특징을 소개해주세요.
- 봉산문화회관은 오밀조밀한 전시장의 특성에 맞게 작품을 배치하는 재미가 있다.
가장 큰 규모의 1전시장은 단체전이나 대관 전시를 많이 한다. 2전시실은 평면회화 등 개인전을 하기에 적당한 크기다. 3전시실은 층고가 높아 다양한 설치를 구현할 수 있다. 설치작업하는 작가들이 선호하며, 큰 작품 위주로 전시된다.
유리상자는 여러 방면에서 볼 수 있는 특징을 살려야하기에, 평면은 구현하기 어렵다. 4전시실은 층고가 높고 낮은 부분이 다 있어 사실 쉽지 않다. 작가가 공간을 해석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한다. 개인전 위주로 진행되다보니 장르 안배도 필요하다.
▶일반 관객들이 동시대미술 작가들의 난해한 작품을 어떻게 해석하면 좋을까요.
- 많은 관객들이 작품을 보면서 의미를 찾으려한다. 하지만 주관적인 해석을 할 줄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작가의 의도는 상관없다. 작가들도 대부분 의미를 단정짓고싶어하지 않는다. 오히려 확장시키고싶어한다. 의미를 따지는 것은 결국 작가의 눈높이에 한정되는 것이다.
사람마다 선을 그어보라고하면 다 다르지 않나. 내가 이 그림을 직접 그린다면 어떻게 그릴 것인지, 직접 작가가 돼서 무궁무진한 생각을 펼쳐야 한다. 그래도 궁금한 점이 있다면 해석을 찾아보면 된다. 스스로 단정짓기 전에 내 경험에 빗대 생각해본 뒤 작가의 생각도 체크해본다면 더 재미있게 감상할 수 있을 것이다.
작품을 해석하는 데에 정답은 없다. 작품이 담은 의미를 맞추려하지말고, 있는 그대로 편안하게 느끼고 받아들여야한다. 도슨트들에게도 당부한다. 관객들이 질문하면 답해줘도되지만, 굳이 먼저 관객들에게 설명할 필요는 없다고.
▶앞으로의 바람이나 목표는 무엇입니까.
- 소외된 지역 작가들을 발굴하는 것이 목표다. 코로나19로 아직 힘든 부분이 있지만, 해외교류도 활성화하고싶다. 우리 지역 안에서만 맴도는 전시가 되길 바라지 않는다. 다양한 문화와 예술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
공공이, 불특정다수가 이용하는 공간인만큼 누구라도 와서 불편함이 없을 작품을 다양하게 선보이고 싶다. 그것이 공적인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대중이 쉽게 접근하면서도 다양성을 확보하는 균형을 잡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작가와 대중 사이에서 이들을 어떻게 연결할 지 항상 고민한다. 각자의 요구에만 맞출 수 없고, 지역 미술 전체의 발전도 생각해야 한다. 지역 작가를 조명하는 것도 물론 필요하지만, 발전을 위해 자극이 될 수 있는 새로운 작가나 작품을 적절하게 소개하는 역할도 하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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