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영화, 詩그림을 만나다] <1> 파워 오브 도그(2021)

시와 그림, 그리고 영화는 이미지의 예술이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상징적이고 은유적인 이미지다. 시인과 화가가 가장 대중적인 매체인 영화를 보고 시인은 시를, 화가는 그림을 그렸다. 흐르는 영상을 화가는 한 장의 스틸 이미지로, 시인은 마음을 헤엄치는 시의 세계로 풀어냈다. 그 작업의 결과물을 '영화, 詩그림을 만나다'를 통해 격주로 연재한다.

파워 오브 도그(2021)

감독: 제인 캠피온

출연: 베네딕트 컴버배치, 커스틴 던스트

러닝타임: 126분

1925년 미국 몬태나. 버뱅크 형제가 25년째 목장을 운영하고 있다. 형 필(베네딕트 컴버배치)은 권위적이며 불같은 성격의 소유자다. 반면 동생 조지(제시 플레먼스)는 형의 등쌀에도 내성적이며 차분하게 자신의 일만하는 인물이다. 어느날 그들의 삶에 미망인 로즈(커스틴 던스트)와 그의 아들 피터(코디 스미스 맥피)가 들어온다. 동생의 갑작스러운 결혼 소식에 분노한 필은 로즈의 아들을 볼모로 삼아 그녀를 옭아매기 시작한다.

영화 '파워 오브 도그'의 한 장면.
영화 '파워 오브 도그'의 한 장면.

제인 캠피온 감독의 '파워 오브 도그'는 제목부터 상징적이다.

시편 22장 16절 구절에서 제목을 따왔다. 영화 속 자막은 '내 생명을 칼에서 건지시며 내 유일한 것을 개의 세력에서 구하소서'지만, 실제 영화 속 영문은 'Deliver my soul from the sword; my darling from the power of dog'이다. '내 영혼을 칼로부터 벗어나게 하고, 내 사랑하는 것을 개의 권세로부터 지키소서'로 해석하면 될 듯하다. 시편 22장은 특히 깊은 좌절과 탄식, 탄원이 담겨 있다.

여기서 '칼'과 '개의 권세'는 악이다. 칼은 야만의 무기이며, 개의 권세는 사악한 의도이다. 그렇다면 영화에서 악은 누구일까. 표면에 흐르는 것은 필이다. 그는 여린 피터와 여성인 로즈를 괴롭히는 폭력적이며 남성적인 인물이다. 그는 결국 피터에 의해 죽음을 맞는다. 외견상 아주 성공적인 복수극처럼 보인다. 약자를 괴롭히는 악의 세력을 물리친 것이다.

그러나 한 겹 아래를 들여다보면 다른 해석이 가능하다. 필이 남성성의 분신처럼 보이지만, 오히려 그는 누구보다 섬세하다. 자신만의 '비밀의 화원'을 가지고 있으며, 마음 깊이 숨겨둔 한 사람을 평생 잊지 못한다. 벤조를 연주하기 좋아하며, 생명을 아끼는 자연주의자다. 그러나 피터는 겉으로는 여리지만, 그 속내는 폭력과 살의로 가득 차 있다. 엄마가 아끼는 토끼마저 거리낌없이 죽여 해부하고, 필을 죽이기 위해 오랫동안 칼을 간다. 그리고 마침내 성공하고, 그 은밀한 살해 도구를 침대 밑에 감춘다. 과연 칼을 지닌 개는 누구일까.

이처럼 '파워 오브 도그'는 여러 겹을 지닌 영화다. 통속적인 복수극에서, 그보다 훨씬 깊은 곳에서 작동하는 심리와 서스펜스, 사회성과 역사성도 건져 올리는 영화다. 여성성과 남성성의 대결이라는 이분적인 해석에서부터 가부장적 권력구조, 혐오와 관용에 대한 통찰력 있는 메시지, 인간 내면을 비집고 은밀히 흐르는 야만성, 그리고 미국 역사가 지닌 억압의 이데올로기 등 참 많은 텍스트가 깊이 흐르는 영화다.

화가 김윤경은 이를 '노란 말'(The Yellow Horse)로 표현했다. 말을 타고 가는 카우보이를 거꾸로 묘사한 것이다. 카우보이는 거친 황야에 말을 달리는 야성의 표본이다. 땀에 젖은 말갈기를 휘날리며, 가죽 재킷과 가죽 부츠로 무장한 그들은 오랫동안 남성성의 관습적 이미지로 묘사됐다. 그러나 영화는 이런 외피 속에 은밀한 퀴어를 집어넣어 오랜 고정관념을 깨버린다. 화가는 말을 타고 달리는 필을 거꾸로 묘사해 이같은 전복(顚覆)을 담았다.

노랑은 성스러우면서 동시에 세속적인 색이다. 필의 외형적 이미지는 폭력적인 남성성의 캐릭터이지만, 내면은 여린 중성적 이미지를 보여준다. 카우보이로 포장된 말보로 담뱃갑 속에 립스틱이 숨겨져 있는 셈이다.

화가는 필의 서로 다른 이미지의 충돌을 노란색의 말을 탄 필의 이미지로 그린 것이다. 여기에 다소 채도가 떨어지는 오간색(五間色)을 사용하여 중성적인 느낌을 연출했다.

'노란 말'은 개념미술가인 브루스 노먼((Bruce Nauman)의 '그린 호스'(The Green Horses)'를 패러디했다. 우화적인 패러디가 아닌 재창조의 의미로서 패러디다. 비디오 아트인 '그린 호스'는 말을 달리는 카우보이를 찍은 뒤 거꾸로 반전시킨 작품이다. 브라운이 아닌 초록빛에 거꾸로 된 하늘 또한 핑크빛이다. 통념을 깨려는 시도인 것이다. 화가는 이를 다시 노란 색으로 비틀면서 전통 오방색의 중첩된 바탕에 올려놓았다.

제이크 레빈은 미국의 시인이자 번역가이다. 김경주 시인의 시집 '나는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 등을 번역해 미국에서 출판하기도 했다.

그는 '파워 오브 도그'를 본 후 한글로 지은 시 '파워 오브 도그마'로 그의 단상을 적었다. '도그마'는 비판이 허용되지 않는 신앙적 교리이자 맹목적으로 신봉되는 독단의 명제다.

도그마는 억압을 낳고, 그 사회적 억압은 역사에 반영된다. 그는 "미국 서부의 역사는 잔인한 이데올로기로 건설됐다. 이데올로기의 또 다른 이름은 도그마이다. 영화의 전경에 나오는 폭력은 배경에서 일어나는 폭력의 반영이다"고 했다. 미국 서부 개척사에서 자행된 폭력성을 고발하는 것이다. 필이 인디언을 경멸하며, 카우보이의 남성적 이미지를 신봉하는 인물로 그려진 것은 미국 역사가 가공한 반영물이다.

시 '파워 오브 도그마'는 카우보이의 땀 냄새와 버팔로의 굵은 털이 느껴진다. 대지를 흔들던 버팔로는 멸종되지 않고 내 배꼽에 살고 있으며, 그 털 숲 속에는 자유를 찾는 카우보이가 여인같은 웃음으로 죽음을 기다리고 있다는 이미지가 그려진다.

시는 '땀으로 만들어진 카우보이들은 원주민을 쏘지 않았다'며 카우보이를 끌어안는다. 영화 속 필이 저지르는 인종차별, 가부장적 이데올로기는 미국 역사가 옭아맨 채찍이고, 그에게 끼얹은 미국 역사의 그림자라고 항변하는 것이다.

시간의 억압이 된 미국 역사의 도그마는 직장(直腸) 속에서 좀비처럼 도사리고 있다. 트위터 속 전사가 되는 법, 컴퓨터로 노는 로봇의 법으로…. 유유히 현대에까지 추악한 유산이 답습되고 있다. 시인은 내 가슴 털 숲 속에 감시되지 않는 산 속 카우보이를 찾아야 된다고 말한다.

그리고 시작(詩作) 노트에서 샤를 보들레르의 시 '취하라'를 언급했다. 보들레르의 시는 '시간에 학대받는 노예가 되지 않으려면 끊임없이 취하라'고 상기시킨다. 취하는 것이 술이든, 시든 어쨌든 취하라고 했다. 시간의 억압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이라는 것이다.

통념이라는 억압을 깨는 '파워 오브 도그'가 건네는 미덕 또한 보들레르의 '취하라'로 이해될 수 있을까.

김중기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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