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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풍] 코로나 장례식 풍경, 공감하고 계신가요

김태진 논설위원
김태진 논설위원

조의금을 직접 전하니 상주 측에서 봉투 하나를 준다. 직접 찾아준 데 대한 답례다. 누런색 봉투 안에는 1만 원권 지폐 한 장이 들어 있다. 심부름으로 조의금을 전했더라도 그 수만큼 답례가 온다. 안동, 의성 등 경북 북부 지역의 예법이다. 서울에서 온 문상객이라도 예외 없다. 더 주면 더 줬지 이런 예법을 모를 거라며 안 주는 경우는 없다.

민감한 예법의 대표 사례는 1659년과 1674년의 예송 논쟁이다. 의미 없는 정치 싸움을 일컫는 대명사가 된 지 오래다. 효종이 승하한 뒤 자의대비의 상복 착용 기간, 1년이냐 3년이냐를 두고 서인과 남인이 다툰 것이다. 1670~1671년 경신 대기근을 겪고도 이어간 그들만의 설전이었다. 학계에선 대기근으로 100만 명이 굶어 죽은 것으로 본다. 조선 전체 인구 추정치가 1천200만 명이었다.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도 정부의 예법 가이드라인이 있다. '건전가정의례준칙'이다. "장삿날은 부득이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사망한 날부터 3일이 되는 날로 한다"라고 권고한다. 어디까지나 권고다. 5일장도, 2일장도 각자의 사정에 맞게 하면 된다.

코로나19 누적 확진 사망자 수가 1만5천 명을 넘었다. 하루 300명 선을 오르내린다. 유족들은 그동안 3일장은커녕 빈소를 차리지 못하기도 했다. 장례를 치러도 화장 후 치르는 장례식이었다. 앞뒤가 어긋났다. 엄중한 정부의 개입이었다. 그나마 최근 들어 장례 후 화장이 가능하도록 허용됐다.

이런 와중에 지난 25일 어처구니없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정부가 1월 27일부터 매장이 가능하도록 했다는 것이다. 어찌 된 영문인지 적극적으로 알리질 않았다. 매장을 원하는 유족들도 화장장을 찾아 전국을 헤맸던 터였다. 그럼에도 괴상한 지침은 그대로다. 나일론 시신 백과 비닐에 싼 채 시신을 매장해야 한다. 육탈(肉脫)이 제대로 될 리 없다. 시신에서 코로나19 바이러스가 나오느냐는 물음에 속 시원한 답변도 없다. 유족이 굳이 매장을 선택하기란 쉽잖다.

유족들에게 확진 판정은 사실상 이승에서의 작별을 의미했다. 중환자실에 입원한 뒤 사망하면 손쓸 도리가 없다. 면회가 안 되니 손 한 번 잡을 수 없다. 힘내라고, 조금만 버텨 달라고 말할 수 없다. 임종을 지키는 경우는 희귀하다. 겨우 한 명이 병실에 들어간다. 방호복을 챙겨 입고 들어가니 대화나 눈 맞춤은 어렵다. 혼수상태에 있다가도 있는 힘을 다해 눈꺼풀을 들어 환자가 가족들을 보는 기적은 없다. 가족들이 CCTV로 병실을 지켜보는 게 대안이다. 미동도 없는 부모를 모니터로 지켜보는 자식의 가슴은 미어진다. 유족들은 말한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이게 패륜이지 뭐겠느냐."

2020년 7월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장례식을 돌이켜본다. 서울특별시장(葬)으로 5일장이 엄수됐다. 성 비위(性非違)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에게 온당한 장례냐는 논란에도 여당 측 인사들은 뜻대로 진행했다. 박 전 시장의 시신이 밤늦게 발견돼 하루가 이미 지나갔다는 점, 해외에 체류 중인 친가족의 귀국에 시일이 소요된 점이 감안됐다는 설명이었다. 인간적으로는 공감할 만했다.

죽음은 모든 인간에게 찾아오기에 공평하다. 정부 여당이 코로나 장례식 풍경에도 공감했다면 어땠을까. 유족들의 입장에서 한 번쯤 생각했더라면 '패륜'이라는 말까지 나오진 않았을 것이다. 인간적인 정부 지침을 기대한다. 회한으로 가슴 치는 유족들이 더는 없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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