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드나무 잎이 성근 초봄, 언덕길을 내려가다 어디선가 새소리가 들리자 고개 돌려 소리 나는 쪽을 쳐다보는 장면이다. 추위가 아직 다 가시지 않았음을 젖혀진 갓 뒤로 방한용 휘항(揮項) 자락이 보이는 것으로 알려준다. 언덕 위로는 모두 여백인데, 왼쪽 모퉁이에 김홍도가 써 넣은 글이 있다.
가인화저황천설(佳人花底簧千舌)/ 가인(佳人)이 꽃 아래에서 부는 천 가지 생황 소리인 듯
운사준전감일쌍(韻士樽前柑一雙)/ 운사(韻士)의 술동이 앞에 놓인 한 쌍의 감귤인 듯
역란금사양류애(歷亂金梭楊柳岸)/ 언덕의 버드나무를 베틀의 북처럼 오가는 금빛 꾀꼬리
야연화우직춘강(惹烟和雨織春江)/ 아지랑이와 봄비를 끌어와 봄 강을 수 놓네
기성유수고송관도인(碁聲流水古松館道人) 이문욱(李文郁) 증(證) 단원(檀園) 사(寫)/ 바둑 소리, 흐르는 물, 옛 소나무가 있는 집의 도인 이문욱(이인문)이 감상하다. 단원(김홍 도)이 그리다
김홍도의 그림을 그와 동갑인 화원화가 이인문(1745~1821)이 감상했다고 한다. 봄날 강가의 버드나무에서 이리저리 날고 있는 꾀꼬리 한 쌍을 생황 소리로, 감귤같은 노란 색으로 노래한 이 시를 주제로 하면서 한복 입고 갓 쓴 양반과 땋은 머리에 말채찍을 들고 짚신 신은 말구종 소년이 주인공인 조선적인 풍속화로 그렸다.
꾀꼬리 소리를 들은 말 탄 양반과 소년은 가던 발길을 멈추고 함께 버드나무를 쳐다보며 꾀꼬리를 찾아본다. 이렇게 생동감 넘치는 조선의 현실 속 인물을 등장시키고, 우리나라의 언덕이고 나무인 조선적인 풍경으로 그리면서 한시(漢詩)의 시적 정취를 시각적으로 표현해낸 김홍도의 능력이 놀랍다. 김홍도는 시의도(詩意圖)이자 풍속화인 '마상청앵'으로 문학적인 아(雅)의 세계와 조선인의 생활 장면인 속(俗)의 세계라는 이질적인 두 세계를 결합시켰다.
이 그림에서 반쯤 펴든 부채는 말 위의 주인공이 길을 가다 새 소리에 놀라 가던 발길을 멈추고 버드나무를 올려다보며 꾀꼬리를 찾아보는 운치 있는 인물임을 시각적으로 설득한다. 사실 언덕길을 내려가는 말 등 위에서 부채를 펴들고 있기는 좀 위태로운 일이다. 버드나무 가지마다 물이 오르는 봄날이다.
미술사 연구자
댓글 많은 뉴스
"재산 70억 주진우가 2억 김민석 심판?…자신 있나" 與박선원 반박
이 대통령 지지율 58.6%…부정 평가 34.2%
트럼프 조기 귀국에 한미 정상회담 불발…"美측서 양해"
김민석 "벌거벗겨진 것 같다는 아내, 눈에 실핏줄 터졌다"
김기현 "'문재인의 남자' 탁현민, 국회직 임명 철회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