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인숙의 옛그림 예찬] 말 위에서 펼쳐든 부채

로봇
mWiz 이 기사 포인트

미술사 연구자

김홍도(1745-1806?),
김홍도(1745-1806?), '마상청앵(馬上聽鶯)', 종이에 담채, 117.2×52㎝, 간송미술문화재단

버드나무 잎이 성근 초봄, 언덕길을 내려가다 어디선가 새소리가 들리자 고개 돌려 소리 나는 쪽을 쳐다보는 장면이다. 추위가 아직 다 가시지 않았음을 젖혀진 갓 뒤로 방한용 휘항(揮項) 자락이 보이는 것으로 알려준다. 언덕 위로는 모두 여백인데, 왼쪽 모퉁이에 김홍도가 써 넣은 글이 있다.

가인화저황천설(佳人花底簧千舌)/ 가인(佳人)이 꽃 아래에서 부는 천 가지 생황 소리인 듯

운사준전감일쌍(韻士樽前柑一雙)/ 운사(韻士)의 술동이 앞에 놓인 한 쌍의 감귤인 듯

역란금사양류애(歷亂金梭楊柳岸)/ 언덕의 버드나무를 베틀의 북처럼 오가는 금빛 꾀꼬리

야연화우직춘강(惹烟和雨織春江)/ 아지랑이와 봄비를 끌어와 봄 강을 수 놓네

기성유수고송관도인(碁聲流水古松館道人) 이문욱(李文郁) 증(證) 단원(檀園) 사(寫)/ 바둑 소리, 흐르는 물, 옛 소나무가 있는 집의 도인 이문욱(이인문)이 감상하다. 단원(김홍 도)이 그리다

김홍도의 그림을 그와 동갑인 화원화가 이인문(1745~1821)이 감상했다고 한다. 봄날 강가의 버드나무에서 이리저리 날고 있는 꾀꼬리 한 쌍을 생황 소리로, 감귤같은 노란 색으로 노래한 이 시를 주제로 하면서 한복 입고 갓 쓴 양반과 땋은 머리에 말채찍을 들고 짚신 신은 말구종 소년이 주인공인 조선적인 풍속화로 그렸다.

꾀꼬리 소리를 들은 말 탄 양반과 소년은 가던 발길을 멈추고 함께 버드나무를 쳐다보며 꾀꼬리를 찾아본다. 이렇게 생동감 넘치는 조선의 현실 속 인물을 등장시키고, 우리나라의 언덕이고 나무인 조선적인 풍경으로 그리면서 한시(漢詩)의 시적 정취를 시각적으로 표현해낸 김홍도의 능력이 놀랍다. 김홍도는 시의도(詩意圖)이자 풍속화인 '마상청앵'으로 문학적인 아(雅)의 세계와 조선인의 생활 장면인 속(俗)의 세계라는 이질적인 두 세계를 결합시켰다.

이 그림에서 반쯤 펴든 부채는 말 위의 주인공이 길을 가다 새 소리에 놀라 가던 발길을 멈추고 버드나무를 올려다보며 꾀꼬리를 찾아보는 운치 있는 인물임을 시각적으로 설득한다. 사실 언덕길을 내려가는 말 등 위에서 부채를 펴들고 있기는 좀 위태로운 일이다. 버드나무 가지마다 물이 오르는 봄날이다.

미술사 연구자

0700
AI 뉴스브리핑
정치 경제 사회
대구·광주 지역에서는 군 공항 이전 사업을 국가 주도로 추진해야 한다는 요구가 커지고 있으며, 광주 군민간공항이 무안국제공항으로 이전하기로 합의...
대구 중구 대신동 서문시장의 4지구 재건축 시공사가 동신건설로 확정되면서 9년여 만에 사업이 본격화될 전망이다. 조합은 17일 대의원회를 통해 ...
방송인 박나래의 전 남자친구 A씨가 개인정보를 불법으로 수집해 경찰에 제출한 혐의로 고발되었으며, 경찰은 사실관계를 조사 중이다. 이와 함께 경...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